[세평시평]노벨상과 고은 시인
나는 고은 시인을 두 번 만났다. 물론 길가를 지나가는 그 분을 멀리서 쳐다보는 것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처음 만남은 고교시절이다. 60년대 말, 내가 속한 〈돌무리〉라는 클럽에서 그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들었다. 그가 화북 원명사에 칩거할 당시이다. 아마 칠성로 어느 빌딩 2층이라고 기억한다. 그의 강연 내용이야 지금 자세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만남은 서울에서다. 대학 시절, 서울 종로에서 흥청거리며 걷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여러 본 본 기억은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이 발악을 하던 시절, 소위 민주화 동지들과 함께 그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소주잔도 오고갔다. 토론시간이 이어지고 내가 제주 출신이라고 하자, 자신의 곁으로 부르며 좋아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제일(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만 저 하늘에 뒤가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은 곧 오리라/”- 고은의 ‘묘지송(墓地頌)’ 중에서
제주생활 당시, 고은 시인은 화북 원명사에 칩거하면서 주위의 무덤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곳에는 제주4·3 당시 죽임을 당한 무덤들도 있었다. 그는 사라봉 오름 중턱에서 무덤을 만나고, 그래서 ‘묘지송’이라는 시도 썼다.
그리고 고은 시인은 2007년 6월 17일 제주평화축제에 초정을 받아 ‘평화’라는 시를 낭송하였다. 1999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옌칭스쿨과 버클리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하다,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 대림동산으로 돌이와 문학에 정열을 쏟을 때이다.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초겨울 남은 잎사귀들 진다/ 퇴근하는 처녀들 종종걸음 친다/ 그곳을 평화라 한다/ 소가 우는 곳/ 누가 잘 모르는 산골짝 꽃다지/ 원추리 꽃 시드는 곳/그곳을 평화라 한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아직도 옛날장이 서는가/ 시끌덤벙 그곳을 평화라 한다/ 굶주림이/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오늘밤 나는 늦게 들어와/ 밥상 앞에 앉아 있다/ 마음 밍밍해서/ 여보/ 한잔 하자” -고은 의 ‘평화’ 전문
매년 10월이 되면 고은 시인은 노벨상 유력후보에 이름이 오른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에게 노벨상이 안기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올해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꼽히면서 그의 자택 앞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리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사회 전체가 우리 문학을 즐기고 존중할 줄 아는 문학 선진국이 돼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노벨문학상은 로또가 아니다"라며 국내에서 노벨문학상을 배출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우리 문학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벨문학상 발표가 당일의 사건 기사처럼 다뤄지고 있는 게 우리 문학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서양어권의 경우 평소에 문학을 즐기고 존중하는 문화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90% 이상을 배출해내는 힘이다. 그리고 원작이 우수해야 되는 것은 기본이고 좋은 번역의 경우 현지 독자 소비층을 감동시키는 '감동번역'이 돼야 한다. 그렇게 우리문학에 대한 사랑, 우수한 원작, 질 좋은 번역 등이 복합적으로 진행돼야 가능하다.그리고 김주연 원장은 '번역(飜譯)은 반역(反逆)'이라고 할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우수한 번역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번역아카데미에서는 현재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7개국 예비 번역가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 우리 문학이 다양한 언어로 국제시장에 나갔으니 이제는 시장의 평가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 관 후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