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家庭儀禮의 變化와 바른 收斂

2010-10-27     제주타임스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것은 25만년이고 그동안 900억 명이나 죽었으며 현재 생존자는 약65-6억 명이란 통계가 있다. 인간의 죽음은 불청객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자기 안에 자리 잡은 삶의 반쪽이란 이야기다. 이런 전제에서 가정문화의 통과의례의 변화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특히 여기서 죽은 다음의 의례의 가치관의 혼돈에 대해서다.

그 혼돈의 동기로 구태탈피, 저 출산, 100세 장수, 호주제폐지 등 새로운 인식의 동기가 더 부추기고 있다. 즉 전통 가치관이 충돌이 소용돌이치고, 여기에는 세계화로 인한 다양화인 직업, 인구이동의 빠른 광역화로 인한 장례문화와 숭조사상의 급변을 도출하고 있다.

그런 징조의 사례를 들면 조상의 무덤에 벌초를 하지 않은 묘지나 제사를 하지 않는 가정이 늘고, 소홀히 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가례기준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여기에 남자 중심의 가통을 유지하자는 보수 성향과 평등지상주의로 전통의식을 불신하는 현실주의가 대립한다. 그러다보니 유산상속에 대한 인식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돈이 많은 가문일수록 재산분쟁의 농도가 크다.

가통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이전은 남녀구분 없이 조상에 대한 기제사나 상속이 평등하고, 가례의 의무도 같이 졌다고 한다. 아들이 없는 가문은 딸이 낳은 자식으로 일종의 서양자제도로 대를 이어 제사도 하였다. 즉 외손봉사란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그러다 가 조선조가 창건되면서 숭유정책이 자리를 잡게 되자 남자 중심으로 가례와 유산의 차별화로 바뀌었다. 남자 중에도 장자에 대한 인식이 지역에 따라 다르나 강하고 재산상속도 그러했다.

이웃 일본은 서양자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아들이 없으면 가를 이을 딸을 선택 사위를 양자로 정하여 가문의 성과 가례의 의무를 계승시켰다. 한국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였다가 민법에 그 조항을 삭제하였다. 근래에 들어 호주제폐지와 더불어 외손을 양자로 맞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지금 주변을 살펴보면 가장 큰 문제는 묘지유지와 이에 따른 벌초와 제사다. 전통제사(유교는 왕가는 5대까지, 당상관은 4대, 그 이하는 수준과 능력에 따라 당조와 부모로 단계화 실시)와 묘제, 설과 추석에 제를 지내는 일은 다양한 행태로 변했다. 그러나 이직은 전통의례를 반대하는 경향은 긍정이 부정보다 높다.
변화된 가례실태를 보면 사망하면 생장에서 화장(전국65%-제주46%)이 급증하고, 기존 묘를 화장하여 납골당이나 절에 위탁 하던가 수목, 야산, 바다에 골분을 묻든가 뿌리는 경우 등 다양하다. 이런 선택이 종교와 가문이나 연령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인자는 후손이 없는 가정(아들이 없거나 무자식)이 늘고 가례자체가 없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여기에 적자나 양자의 존재와 선택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아들을 못 가진 가정은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이 문제의 중심에 가통을 잇는 데 쉬운 양자제도의 도입이다. 서양자제도, 외손양자, 사후양자 등을 통해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리라 본다. 민법개정이나 현행법을 융통성 있게 운영하면 가능한 길이 있다고 본다.

이런 가문의 급진적 변화의 사례를 해결하는 선택으로 제사는 당조까지, 남편제사에 부인을 함께 하는 경향이다. 분묘는 화장을 못하면 평장으로 봉분의 시신보호 역할을 심장(深藏)으로 대신한다. 비석도 평 비석으로 집단묘의 경우는 묘단 중심에 상석을 설치, 공용하고 있다. 묘의 구별이 가능하도록 표기하는 등 간소화하고 있다. 반대로 결혼의식은 비용의 증가로 어려운 사람들의 큰 짐이 커지고 있다.

옛날은 죽으면 초상에 이어 소기와 대기를 치렀으나 지금은 소대기는 거의 사라졌다. 제사는 당조까지만 하고 증조이상은 벌초나 묘제 시에 겸행하고 있다. 벌초도 자기가 않고 농협이 나 회사, 개인과 계약형식을 통하여 인터넷(세계화)으로 확인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이런 문제는 무후하여 별초 할 후손이 없으면 문종에 공동기금을 설정 생전에 기부를 하고 사후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다고 본다.

 대행도 보험을 통하여 해결하는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서글픈 일은 선조나 가례보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다. 죽으면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것이 인생인데 말이다. 나의 이런 문제제기에 대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지혜를 찾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고 바람직한 새로운 인식변화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  계  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