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의료관광 허브’ 경쟁 치열

제주 신성장동력 ‘의료관광’(중)-해외 주요 국가 사례

2010-10-26     좌광일

글로벌 의료시장에서 한국을 훨씬 앞선 아시아 국가로는 태국과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태국은 지난 2007년에 유치한 외국 환자가 무려 154만명에 달한다. 이를 통해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싱가포르가 한해 유치하는 외국 환자도 40만명을 넘는다.

반면 2007년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고작 1만5000여명. 한국 의료관광 산업 규모가 태국의 100분의 1, 싱가포르의 27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의료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의 의료관광객 유치목표는 5만명이었다.

태국과 싱가포르가 아시아 의료관광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태국

임상의학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떨어지는 태국이 외국 환자 유치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차별화 전략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 의료계는 당시 의료설비의 50%를 늘려야 하는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불황 타개를 위해 고심을 거듭한 태국 의료계가 내놓은 전략이 바로 ‘롱 스테이(Long Stay) 프로젝트’다.

관광국가로 유명한 태국의 이점을 살려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노인들이 태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의료 서비스와 함께 스파, 마사지 등의 다양한 체험을 즐기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태국을 찾은 외국 환자는 2001년 55만명에서 2003년 97만명, 2005년 128만명, 2007년 154만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민간병원협회에서 제시한 ‘의료관광’ 아이디어를 태국 정부가 적극 지원,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서면서 의료산업이 급성장한 것이다.

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은 30여개 민간병원에서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태국에는 공공병원 752개, 민간영리병원 248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의료관광 전문병원으로는 범룽랏, 사미티벳, 방콕 병원 등이 꼽힌다.

태국은 아시아 의료관광 허브를 목표로 관련 산업을 집중 육성, 해외환자 유치와 부가가치 창출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태국 정부는 외래관광객의 40%를 의료관광객으로 보고 있으며, 관광과 의료서비스를 연계하는 ‘의료관광’을 차세대 국가 핵심산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의 의료관광 육성 전략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차별화된 틈새시장 공략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 전략이다.

선진국 고령자를 타깃 시장으로 선정해 풍부한 관광자원을 활용한 장기 투숙과 요양을 위한 휴양리조트, 여가프로그램, 일대일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는 공신력 있는 의료서비스의 국제적 인증이다.

태국은 자국 내의 병원 시설과 의료진 수준에 대해 국제병원인증원의 인증을 얻도록 함으로써 대외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 건강관리서비스, 허브상품의 동반 성장 전략이다.

태국은 의료서비스 뿐 아니라 스파, 전통마사지, 허브상품 등이 융합된 복합의료관광 시장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이 뛰어난 관광자원을 활용했다면 싱가포르는 비즈니스 도서로서의 이점을 잘 살렸다는 평가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투자은행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자리 잡은 기업·금융 허브라는 점에 착안해 세계적인 의료기관이 들어선 ‘의료 허브’ 건설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병원들은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 중 하나인 존스홉킨스 대학 등과 제휴하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연구개발(R&D) 센터 유치, 바이오산업 육성 등에 힘쓰며 명성을 쌓아나갔다.

외국환자 유치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의료기술의 신뢰성이라는 점에 착안한 이 전략도 큰 성공을 거뒀다.

2000년 15만명이던 외국환자가 2002년 21만명, 2004년 27만명, 2007년 40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싱가포르의 의료산업 경쟁력 중 하나로 병원 간 평가시스템이 꼽힌다.

2.3차 의료서비스의 80%를 담당하는 공공의료기관을 동과 서로 나눠 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꾀하고 있다.

이 두 권역은 매년 상호 평가 후 실적에 따라 차등 지원을 받는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는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도 ‘아시아의 바이오폴리스’를 기치로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을 유치하고 연구개발센터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일부 병원은 해외환자를 위한 전용서비스센터를 통해 진료예약, 항공권 구입, 숙박 및 관광, 통역, 환전 등 외국인 환자에게 필요한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사례의 시사점은

그렇다면 이들과 맞설 수 있는 우리의 강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보다도 앞선 동아시아 최고의 임상의학 수준을 꼽는다.

2005년 대학의학회에서 미국과 한국의 의료기술의 전반적인 수준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의료기술은 미국의 80~9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일부 암, 불임, 성형, 치과 등의 분야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동등하거나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암 수술 5년 후 생존율을 보면 위암은 한국이 47%, 미국이 23%였으며, 간암은 13%와 10%, 전립선암은 80%와 73%로 한국이 미국을 앞섰다.

특히 각 대학병원이나 전문병원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기술을 잘 살려 해당 분야의 ‘명품 의료’ 이미지를 구축하면 글로벌 의료시장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한국이 글로벌 의료시장에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일부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은 외국인 환자와의 의료분쟁 등을 우려해 외과 분야보다는 건강검진 등에 치중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외국인 환자를 대하는 서비스도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전문 의료통역사나 외국인 전담 코디네이터, 국제마케팅 전문가 등은 외국환자 유치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대규모로 양성해야 할 인력들이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환자와 의료분쟁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이고 상호 수용 가능한 기준만 마련돼 있으면 큰 문제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각 의료기관의 역량을 집중하는 전문화와 서비스 질의 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