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베르테르 효과

2010-10-12     제주타임스

제주지역에서도 자살이 증가추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사자가 143명으로 3일에 1명꼴이다. 제주지역 표준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31.7명으로 강원도 38.1명과 충북 37.5명에 이어 전국에서 세번째로 뛰어 올랐다. 자살과 자해로 인해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도 563명이나 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고 30여 동안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삶에 대한 허망함·좌절감이 모방심리와 어우러져 생겨난 사회현상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대의 걸작이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동반 자살을 일으키는 자살 사이트는 21세기 암적 요소이다.

그래서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흔히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하였다.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David phillips)가 그 이름을 붙였다.

희랍신화에서는 자살이 부정적인 의미로 묘사된 적이 없다. 오히려 헤라클레스는 불로 자살함으로써 불멸의 신들이 사는 올림푸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희랍신화가 자살을 예찬한 것과는 달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살을 비판했다. 신들이 인간들을 보호하며 인간들은 신들이 소유한 목장에 속한 가축들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자살은 신들의 분노를 촉발하는 행위라고 하였던가? 소크라테스의 독배사건에서처럼 형벌의 일환으로 자결을 명령할 때는 자살이 허용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필요 없는 사람은 자폐증 환자밖에 없다.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은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사람에게도 남아있다. 자살은 자기 목숨을 자기 손으로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다. 사람의 목숨을 사람의 손으로 끊는 행위는 보편적으로 모두 반도덕적인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유한 국가이다. 자살률이 해마다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동안에 인구증가율은 아시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지난해엔 사상 최고치인 31명이었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절반가량인데 이 가운데는 우울증에 의한 자살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청소년 자살도 급증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교생은 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에서 2009년 202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의 경우 자살 원인은 가정문제가 69명으로 가장 많고, 우울증·비관 27명, 성적비관 23명, 이성관계 12명, 신체결함·질병 7명, 폭력·집단 괴롭힘 4명 순이었다. 교과부측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타 분류자 59명에 대해 “베르테르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프랑스도 1년에 1만2000여명이 자살하며 16만여 명이 자살기도를 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자살자수가 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면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 정부가 마련한 자살방지 프로그램은 자살기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고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이 회복하도록 돕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자유로운 결단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의 결단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인들에 의하여 강하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자살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인들을 분석하는 작업은 자살문제를 다룰 때 매우 중요하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