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4억 명품녀의 행복 과 돈

2010-10-04     제주타임스


지난달에 케이블TV채널 엠넷(텐트더인시티)에서 방송된 한 젊은 여성 얘기가 우리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왔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입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가 4억 원에 이른다는 이 여성의 이야기다.

입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를 합치면 4억 원이 넘고 특별한 직업 없이 과년한 여성이 용돈을 부모에게 타 쓴다는 말로 촉발된 이른바 ‘4억 명품녀’ 얘기는 인터넷 댓글 공방에서 방송 조작의 의혹과 세무조사 필요 등으로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방송내용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모든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외면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치가 높은 물질은 돈이다. 돈과 행복은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돈을 많이 가진 자를 우리들은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너먼 교수와 앵거스디턴 교수가 미국인 45만 명을 대상으로 행복과 돈에 대한 저명한 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 <주머니속의 행복, 데이비드, 마이어스 저, 김영곤 역> 연간 소득7만5000달러(약8700만원)까지는 소득이 늘수록 행복감도 커지지만 그 이상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국민1인당GDP(1인당 소득지수)을 감안한다면 4500만원 내지 5000만 원쯤 되는 연봉소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봉이 5000만 원 이상만 되어도 행복감은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돈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가난이 불행을 야기한다는 말은 대체로 맞다. 앞서의 분석에서도 이혼 한 사람들은 연소득 1000달러 이하는 51%가 스트레스를 받지만 소득이 3000달러까지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는 24%까지 줄었다는 것이다.

의식주나 교육, 의료 등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없는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일정 수준까지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갖춰졌다고 동경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옷장에 명품가방과 명품 옷으로 그득 찼더라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에는 끝이 없고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왜! 우리들의 원하는 것에는 끝이 없는 것인가?
행동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에드디너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우리나라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국인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기 때문에 행복도(幸福度)가 낮다고 했다. 디너교수는 130개국 13만 여명을 대상으로 행복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인의 행복 도는 5,3점으로 130개국의 평균치인 5.5점보다 낮다는 것이다.

이유는 ‘물질적 가치 중요성’을 묻는 조사에서 한국은 7.24를 기록해 미국5.45, 일본6.01보다 높은 수치로 조사 되었고, 최고의 가난한 나라(집바브웨<5.77>)보다도 더 물질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너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대로 간다면 더욱 잘살게 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했다. <thenanniz. com>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욕(物慾)을 갖기 마련이지만 왜 우리들은 이토록 물질 중심주의 적일까. 한국사회의 물신(物神)숭배에 관하여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사회학자 정수복은 그의 저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서 한국인의 물질주의에는 무교(巫敎,)가 깔려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무교(shaman)에는 기독교의 구원이나 불교의 해탈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가 없다. 무교는 이 세상이 끝나서도 다른 초월세계가 없다는 것이다.

 철저한 ‘현세주의(現世主義)가 무교의 원리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액(厄)을 풀고 복(福)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인간의 관능적 욕구와 물질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당(巫堂)이다. 그래서 개업(opening ceremony)할 때에는 돼지머리에 지폐를 쑤셔놓고 절을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극으로 치닫는 세상이지만 우리들의 선조유교 문화권에서는 돈보다는 공부와 벼슬을 우선하는 세상이었다. 벼슬 없이 돈만 버는 계층은 사농공상(士農工商)가운 제일 밑바닥 계층인 상(商)이라고 해서 천대를 받아야만 했다.

이런 신분제 하에서는 부(副 )가 있다고 곧 권력이 되지 못했다. 양반들에게 언제든지 가지고 있던 재물을 뺏길 수 있었던 문화였다. 물론 봉건주의 문화가 좋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물신만능주의를 걱정하는 말이다.

이제 달 밝은 밤에 귀뚜라미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이 좋은 계절, 4억 원의 명품녀 논쟁에 앞서 혹 우리가 정작 원하는 것들을 잊고 살지 않았는지, 옆집에 것, 남의 것 보느라 지금 자신에겐 눈을 감은 것은 아니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어떨까?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