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자들의 추석명절

2010-09-15     제주타임스

추석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여자들의 명절 증후군이 도지는 듯하다.

TV에서는 아내를 도와주자는 공익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격세지감과 함께 은근히 걱정되는 면도 있다.

남성들은 교양이 없고 무례하다는 오해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다.

추석에는 아내들을 돕자는 슬로건부터 파트타임쿼터(Quota)제까지 쏟아진다.

추석연휴에 외국관광지에서 차례를 지내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고 있는 요즘이다.

이는 이 땅의 여성 불평등과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유리천장(glass ceiling) 이야기다.

간혹 여성주의를 이기적 여성들이 자신들만 편하자고 내세우는 편향된 논리로 여기는 남자들이 있다.

여성주의를 젠더(gender)가 아닌 성(sex)의 개념으로 생각해'여자주의'로 오해하는 생각일 수 있다.

요즘은 추석풍경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 내가 어렸을 때 추석은 인심의 넉넉하고 정이 감도는 축제였다.

조상님 앞에 정성들이기 위해서 이발하고, 목욕탕에 목욕을 다녀오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제주시에는 목욕탕이 산지 목욕탕 하나뿐이었고, 목욕도 지금 같이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명절전날이나 특별한 날만 했었다.

그 당시에는 명절 전날은 대목이라 하여서 이발소, 미장원은 밤을 지새웠으며 손님도 서너 시간씩 기다리면서 목욕, 이발을 했다.

비록 부족하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정말이지 그리워지는 정감 있는 명절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면 지난 것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리운 것인가.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그리움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 그리움은 우리네 일상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은 생각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요즘여성들의 명절스트레스는 시대의 산물이다. 여성의 특정성을 옹호하거나'여자'만 혜택을 입겠다는 이기적 발상의 산물이 절대 아니다.

기존의 이분법적 성 역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과 불평등을 불러 일으켰는지를 우리남성들도 더욱더 잘 안다.

그래서 벨기에의 루스이리가라이 (luce irigaray)페미니스트 철학자는 여성주의란 비단 여성뿐 아니라 '광기, 무질서, 모든 저급한 것들 (즉, 모든 소수자들)과의 결합'이라고 주장했다.

쉽게 한마디 한다면 억압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부장적 가정문화 시대 있었던 말이다.

아주머니는 호칭에 '주머니(밭)'를 가지고 있고, 아저씨는 '씨(혈통)'를 가졌기 때문이란다.

사회문화적 인간의 젠더(gender)와 생물학적인 성, 섹스를 혼동한 말이다.

기존의 경직된 성 역할에 피해를 입는 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남성들도 남성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남성자신들에게도 성관계를 감성화하고, 정서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을 방해한다. 생계를 오직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은 남성의 과로를 부추기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주의는 획일적 금 긋기를 넘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같이 책임을 지고, 기꺼이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 다가가는 일종의 정도운동(正道, Victory of human)이다.

또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성 모두를 지닌 양성적 존재라는 가정 위에 양성평등 실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주신 법이다.

추석날 성심껏 아내를 도운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당당히 발언하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조금만 더 생계책임을 함께 져 줄 수 있겠냐고. 반대로 명절날 시댁을 위해 열심히 일한 여성들이여, 당당히 말하라.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만 더 가사 일을 나누어 줄 수 있겠냐고.

요즘 나이 많은 여성들이 과거에는 가정형편으로 공부를 포기 했던 젊은 주부들이 가사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무던히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짠한 적이 많다.

어렵게 입학한 늦깎이 방송통신대학주부학생들이 학사, 석사, 박사자격을 취득하는 세상이다.

올 추석이 굳이 어떤 '주의'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위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도와주는 남편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또 그런 아들을 격려해 주시는 부모님들도 많아졌으면 한다. 정말 사람의 더블어사는 삶을 깨달은 아들과 며느리라면 부모님들의 삶도 함께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함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격려해 주고, 여성들의 추석증후군은 남성자신들을 도와주기위한 전단계인지도 모른다. 여성주의가 남성들을 도와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알아야한다.

콩 반쪽도 나누어 먹는 심정으로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며. 이게 아이들에게 그리움, 기다림, 정을 심어줄 수 있는 가정의 원천이고 근본이다.

금년 추석만은 여건이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을 잘 쓰다듬고, 우리 모두 조상의 음덕을 잘 기리고 정감 있는 가족 친척들의 정이 훈훈한 축제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