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한국문학의 종언
소설가 백가흠이 쓴 한그루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시인 박형준과 치악산에 올랐다. 등단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등단한 지 십년쯤 지난 박형준에게 물었다. 형 연봉은 얼마나 돼요? 박형준이 껄껄 웃더니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쯤 될까, 라고 대답했다. 문학하는 사람에게 연봉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일본은 1980년대에,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문학이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문학의 쇠퇴를 보며 ‘근대문학의 종언(終焉)’을 실감한 작가들도 많다. 이는 문학에 종사하는 문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문학청년 시절에 접했던 월평(月評)이나 연재소설은 신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지방신문에서 그 지역작가들에게 배려했던 단편연재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문청시절 발간되던 유일한 월간지『現代文學』은 다른 문학지들이 우후죽순 발간되면서 그 기력이 쇄진했는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수많은 문예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작가에게 고료를 지불하는 잡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이제 ‘한국문학의 종언’은 바로 눈앞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1990년 대 말 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학생운동은 쇠퇴했지만, 노동운동은 매우 왕성했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 집회에서는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그것이 노동운동이 불가능한 시대, 일반적으로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이 아닐까?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학도 그것과 닮아 있다. 한국에서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것을 떠맡았다. 문학은 체제와 화해하지 않는다. 문학은 절대 체제에 무릎 꿇지 않는다. 문학은 체제가 내미는 손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은 이미 끝장이 난 것일까? 이제 체제와 잘 어우러져 로또지원금을 받고 대학교수가 되고 문학의 본질로 돌아가라며 비정치적인 양상을 띈다. 이 모두가 바로 한국문학의 종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특별한 의미, 과도하게 부여되었던 도덕적 책임을 가졌던 한국문학이라는 근대의 문학이 과연 끝난 것일까?
일본인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문학 위기론들이 있지만, 카라따니의 '종언'은 확실히 치열했다. “국민국가가 완성되면서 문학이 윤리적, 지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그의 근대문학 종언론은 그의 추종자에게 ‘문학 자체의 종언’ 선언과 다름없었다. 오늘의 인간 사회가 처해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문학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의 종언은 1980년대 후반에 징후를 보였던 ‘과거형’일까?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한국문학의 본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 글을 쓰는 작가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에 만족해야만 할까? 작가가 가로수를 부러워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요즘 방송드라마 작가 원고료가 회당 5000만원 시대를 넘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내가 방송드라마를 썼다고 인기가 치솟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방송드라마는 소설의 영역에서 아주 빗나갔지 않은가?
이미 죽어버린 시와 소설들은, 오히려 그 죽음으로 인해서, 더 첨예하게 삶과 세계를 대면할 수 있을까? 이 죽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정확하게 오늘의 문학이 지닌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문학이 죽었다, 그러자 완강한 체제를 끈질기게 교란하는 유령의 문학이 태어났다! 유쾌하고 불편한, 유령으로서의 문학. 그것도 좋다고, 모두가 손뼉을 쳐야할까?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