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몰락

2010-08-23     제주타임스

2002년 4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아르헨티나 지배계급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전 경제장관 도밍고 카발로가 무기 밀매, 세금 포탈, 직권남용, 기밀(예금인출 제한 조치)누설 등 각종 혐의로 조사받고 구속된 이후의 일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카발로는 희생양일 뿐이며 또 다른 부패세력들은 지금도 여전히 각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부패 혐의는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에미르 요마 등 다수이며 부정부패의 몸통은 메넴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위기의 본질은 외세와 결탁한 부패 정치권력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가 도달한 결론이다.

필리핀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지만 현재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1000달러 수준으로 아시아의 최빈국에 속한다. 필리핀은 소득상위 5%의 부자들이 경제활동과 국가 부의 90%정도를 장악하면서 세금은 별로 내지 않는다. 필리핀 부자들은 정치권력까지 장악해 4-5개의 족벌이 정치권력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고 한다.

위의 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제적으로 잘살던 나라들이 최빈국으로 떨어지는데는 1세기도 걸리지 않는다. 각 나라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대개는 지도층의 부패와 탐욕이 나라를 망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총리, 장관 청문회때 마다 위장전입과 탈세, 투기, 논문 표절, 이중게재 같은 도덕성 결여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 장관 내정자들이나 국민들도 면역이 돼 웬만한 부정에는 별로 감동(?)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까지 위장전입 전력자이고 보면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직자의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위장전입자는 일체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합의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것 같다.

공직 취임을 무조건 금지시킬 경우 쓸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과거에 저지른 위장전입을 상쇄할 수 있는 벌금을 내거나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직에 나서게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일이니까, 잘못을 시인했으니까 봐주고 넘어가자는 식의 막무가내식 공직자 임용은 정부 여당에서 할 말이 아니다. 외국에서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한 학부모를 3급 중절도죄 및 1급 문서위조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신임 장관들은 위장전입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는 부인의 쪽방 투기 의혹이 일고 있다. 위장전입만 5차례나 되는 것으로 보이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는 경기도에 부인명의로 사들인 임야가 두배나 폭등했다는 투기의혹이 일자 최근 매각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는 4인 가구가 지난 몇년 간 거의 생활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생활해 오는 생활의 달인으로 드러났다. 현금영수증이나 신용카드 사용액을 모두 0원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을 도지사급 이상 되는 고위층은 갖고 있는 모양이다.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면 국민 모두가 배울 필요가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군복무중 파견교사로 영외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60년대 중반 군인 파견교사 제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학까지 보내주고 졸업을 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군생활을 하면서 대학까지 졸업했다는 뉴스는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에게는 뭔가에 한 대 맞은 듯한 믿기 어려운 말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딸은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도층 인사의 딸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것도 답답한 일인데 적은 금액의 진료비를 내는데도 인색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서민층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장관이나 경찰청장을 국가관이나 도덕관이 분명한 사람을 원하는 이유는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처럼 수십년 이내에 못사는 나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사익을 위해 부정부패, 편법을 사용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국가와 민족보다 임명권자가 원하는 대로 정책을 집행할 것이 뻔하다.

국무총리실이라는 곳이 과거 정권에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회사까지 다니지 못하게 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불법사찰과 뇌물수수, 무능에 따른 엉터리 인사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  종 현
기획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