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여름 피서는 공공도서관에서
한달 넘게 장마가 이어져 제주섬을 축축하게 적셔 놓더니 끝나자 마자 연일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가마솥 더위가 이어진다. 야간 최저 온도도 25~27도를 나타내며 제주 전역이 열대야로 몸살이다. 이럴 때면 누구나 피서를 고민하게 된다.
나름대로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시원한 계곡 또는 여름바다로 떠나거나 선풍기를 틀어 놓고 초석에 대자로 누워 단잠을 청하던지 세수대야에 발목을 담가 시원한 수박을 먹는 방법 등등 문득 어린시절 여름을 견디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때는 아이스크림을 ‘아이스케끼’ 또는 ‘하드’라고 불렀다.
친구들 중 한사람이 아이스케끼 하나를 사면 그 하나로 친구 모두가 쪽쪽 빨며 돌려먹었다. 절대 끊어 먹으면 안되는게 불문율 이었다. 다 먹고 난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는 곳이 바로 은행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다. 은행직원의 시선을 피하며 에어컨 바로 옆 의자에 쪼르르 앉아 나가라는 은행직원의 호령이 떨어질때까지 숨죽이며 땀을 식혔다. 그때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편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면 어릴 적 은행에서 눈치 보던 생각이 나 미소가 절로 인다. 얘들은 은행에서 안쫒겨 나기 위해 한마디 잡담없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던 그때 그 어린 아이들의 기분을 알까.
성인이건 학생이건 간에 여름철 피서의 적지로 공공도서관을 권하고 싶다.
그 이유로는 첫째,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쐰다고 절대 나가라 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시민을 위해 설치한 공간이기 때문에. 둘째,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이와 함께 독서습관도 길들일 수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책을 읽는 사람들 옆에 오래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 습관을 체득하게 될 터이니. 마지막 셋째는 자녀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다른 시설들에 비해 정숙해야 한다. 큰소리로 떠들 수도 없고, 소란을 피울 수도 없다. 심지어 발자국 소리도 조심스럽다. 이렇게 남한테 피해를 안 주려 자꾸 신경 쓰다보면 본인도 모르게 몸가짐도 발라지고 행동도 차분해 져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도서관 이용자 중에 기억나는 모자가 있다. 일곱 살 정도의 어린애와 엄마인 이들은 휴일이면 으레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에 온다. 오전에는 어린이에게 책을 골라주어 스스로 읽게 하고 본인도 다른 책을 보며 시원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나눠 먹고, 오후에는 비디오를 함께 보며 놀아준다. 당연 어린이는 조용한 도서관 분위기에 젖어 여느 어린애들처럼 보채거나 떼쓰지도 않는다. 아, 이런게 자녀교육이구나 싶었고 더운 여름을 참 알차게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개방되었다지만 아직까지도 도서관을 공부하거나 책 대여 장소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이라도 당장 애들 손을 잡고 가까운 공공도서관을 방문해보자.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터넷이나 비디오물 감상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고 관 혁
서귀포시 표선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