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름 장맛비
오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천둥소리와 함께 장맛비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축축함을 기억하기도 전에 다시 구름을 걷고 파란 하늘을 보이기도 하며 곧 화창한 날이 된다. 이게 여름장맛비다.
나는 비가 오면 제주시내 칼호텔앞 교보빙딩(생명보험)간판 문구가 떠오른다. (지금은 바꿔졌지만), “대추가 붉어진 것은 그 안에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태풍 몇 개가 만든 것”이라는 장주석 시인의 시어다. 인생을 다 표현한 말 이다.
지금 장마의 변화무쌍한 하늘은 삶과 죽음이 연속을 위함이며, 또 벼락 천둥의 불안은 삶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가슴 속의 하늘은 제각기 장마가 되기도 하고 화창한날이 되기도 한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흠뻑 품은 비를 쏟아내어 금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질 것 같지만, 금세 맑은 하늘이 되어 마음의 시름조차 걷어간다. 여러 얼굴로 요술을 부리는 하늘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하늘의 원초의 것으로 여긴다. 그저 그렇게 여겨온 것이다. 화창한 날로 예견되지만 곧 장맛비가 내린다. 낮게 드리운 하늘은 구름 조각들이 쪼개지면서 그냥 회색 배경으로 그저 비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하늘은 거기 어디에도 없다. 천재적으로 하늘을 묘사하며 잘 그려보아도 그와 꼭 같은 하늘을 다시는 그릴 수도 찍을 수도 없고 그때와 꼭 같은 하늘은 다시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늘이 그냥 거기 그렇게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영원함을 우리는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늘’,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여기고 가장 쉬운 단어로 쓰이지만 우리는 하늘을 어떻게 알아야 하나?
하늘이란 말뜻은 크고 깊고 넓다. 실지로 표현하기보다 관념 속에서 무한대 요, 과학적으로도 결코 단조롭지 않다.
살아온 세월과 함께 하늘은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여러 형태로 우리들에게 비친다. 하늘 아래 만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멀리 생기는 일일수록 하늘이 내린 일로 여긴다. 천재지변은 물론이요, 하늘 아래 일어나는 불가항력의 일은 모두 하늘의 탓으로 여긴다. 참으로 인간에게 편리한 하늘이다.
거기 어디에도 하늘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도 각기 존재하고 있다. 그런 하늘의 위력 또한 무한함을 우리는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며 대처해 간다. 욕심 없는 하늘의 영원함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갑자기 천둥치며 번개가 번쩍이고 장대비가 쏟아져 갓 생긴 신작로 위를 숨도 쉬지 못하고 달리면서 하늘을 몹시 무섭게 느꼈던 기억들은 나이든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곧 먹구름 걷히고 비친 여름의 저녁 햇살은 멀쩡한 하늘의 변덕이다. 변덕은 불안과 안도의 경계선이다. 불안과 안도는 등을 맞대고 내내 함께 산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눈부시며 밤이 있기에 새벽이 곱다. 악이 있어 선을 대했을 때 비로소 감동한다. 그래서 불안도 안도를 견인하는 힘을 만드는 것이리라.
인간이란 잡히지 않는 불균형 속에서 의연히 균형을 잡으려고 계속 노력하는 존재다. 이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그 누가 예견할 수 없는 하늘은 끊임없는 장마도 만들고, 태풍도 만들고, 천둥, 벼락도 만드는 변화, 그 허허로움 속의 영원함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불현 듯 “인간은 울면서 태어난다.” 라는 <리어왕> 중의 대사가 떠오른다.
늙은 리어왕이 부르짖는 그 말은 인생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어느 시한이 되면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 그런 불안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에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고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를 바로 쳐다보고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당당한 자세를 취한다. 이는 한정된 삶이므로 더욱 소중히 여기려는 생명의 몸부림이다.
앞에서 늘어놓은 장마 시에 하늘의 내리는 천둥, 벼락, 태풍은 이 하늘 아래 세상 삶과 무관치 않다. 삶에는 벼락, 천둥, 태풍의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만큼의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이 인간의 꿈이라면 구름도 비도 천둥도 벼락도 하늘이 내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팔꽃은 아침 햇살을 받고 피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있던 냉랭한 밤의 시간들과 같은 과정이 꼭 있어야 피는 거다. 24시간 햇살 만 쬐어도 꽃은 피지 않는다.
불안을 잃어버리는 날 우리는 안도도 삶도 함께 잃게 될 것이다. 그것들의 시소놀이가 오묘한 겨누기를 계속하니, 오늘도 변화는 계속된다. 삶은 영원한 변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삶에는 벼락과 천둥을 동반하는 장마가 있기에 유연한 균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과거에 잘나가던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고, 어렵던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제 목소리를 내고 산다. 이것은 장마 뒤에는 분명히 맑은 하늘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