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삶속에 행복함수(函數)

2010-07-11     제주타임스


며칠 전 인기 스타가 자살을 했다. 사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인가 인기 절정에 있고 한창 젊은 나이에 왜 삶을 마감 한 것일까? 유명을 달리한 고(故) 박용하의 영전에 애도와 명복을 빈다.

고박용하는 1997년 TV 드라마 '테마극장'으로 데뷔한 후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일본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인기와 부를 가까이 둔자가 왜 자살을 했을까? 얼마나 삶의 고통스러우면 단 한번뿐인 목숨을 끊는 것일까,

자살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행복 함수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속에서의 행복 함수란 어떤 것인가, 보통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행복=성취(부자, 인기, 권력…)+욕심이라는 것이다. 함수에 따르면 행복은 성취에 비례하고, 욕망은 반비례한다고 한다. 따라서 행복의 값이 증가하려면 성취를 늘리거나, 욕심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이 행복함수 수학 공식은 실지 맞는 것일까? 이 행복함수 공식에 변수를 정의하면 불교인들의 행복함수는 행복=자비+집착이 된다. 행복은 자비에 비례하며 집착에는 반비례한다고 설명 할 수 있다. 또 기독교인들도 이런 등식으로 풀면 행복=사랑+집착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일반인이든 불교식이든 기독교식이든 자신의 행복해지려면 진정한 자아실현을 자신의 성취라고 여기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성취의 대상을 돈(富), 권력, 성(sex) 등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느 시점에 서는 스스로에게 타협을 해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여 성취에 대한 갈망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삶 자체가 점점 행복의 량은 줄고 종극에는 자살로 방향을 돌린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맞는 삶의 철칙이지만, 우리들의 실천하기는 더없이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물질적으로 부유하게된 것은 분명하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섰고 절대빈곤을 논하는 단계도 넘어섰다. 그럼 옛날보다 더 행복한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이 이를 숫자로 웅변해주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첨예한 사회적 갈등과 낮은 공적 신뢰 역시 우리 사회가 불만제로 사회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자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아닐 것이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19세기에 중요한 것이 군사력이었다면 20세기는 물질적 풍요이고 21세기는 인간의 삶과 웰빙이다. 경제규모나 소득(성취)수준이 반드시 국민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국가를 대상으로 개인의 행복수준과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인간의 복지를 측정하는 데 과도하게 물질적인 측면에 치우치지 말고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다양한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한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은 기능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가난은 단순한 소득의 부족이 아니라 역량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해주기 위한 수단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 정책목표에 다차원적인 삶의 질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이 개념은 건강, 사회적 관계, 자연환경의 질과 같은 물질적 차원이 아닌 측면을 포괄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 및 객관적 지표 모두와 관계가 있다. 객관적 삶의 지표는 개인이 생각하는 평가와는 독립적으로 사회적 현상을 제시하는 것이고, 주관적 지표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개인적 인식을 계량화 한 것이다. 서로 상이한 철학적 전통에 기반 한다고 하지만 모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행복이라는 다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측정하고 지수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부자로 사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통계적으로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1962년 1인당 국민소득 62달러 시절에는 먹을 수만 있으면 자살을 안 했다고 한다. 이제는 옆집의 생활정도에 따라 상대적 빈곤감을 갖는 세상이 다. 옆집은 40평인데, 자신은 25평 아파트라는 불만이다.

그래서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 함께하는 행복함수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인가, OECD국가에서 자살1위라는 사실도 삶 속에 계량화된 행복함수로 처방될 것이라는 망상의 나례를 가져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