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아이들이 희망입니다’"
영국 노동당 당수의 아버지가 기자들 앞에서 부르주아를 흉내내는 자신의 아들을 대놓고 비판하였다. "그 녀석은 노동자의 품위를 저버린 놈이다. 왜 부르주아들처럼 천박하게 비싼 식사를 하고 비싼 호텔에서 묵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똑같이 '부'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해방은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과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사회주의자들은 권력만 바꾸었을 뿐 '가치'를 바꾸지 못하였다. 진보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를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6명이 당선되었다. 수도권에서는 ‘진보교육 벨트’가 형성되었다. 강원·전북·광주·전남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현 정부의 교육정책들이 사안마다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육당국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법률에 따른 정책은 강행하더라도 상당수는 교육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제는 정부가 '지침'으로 교육청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제주교육계에도 새로운 진보바람이 불었다. 지난 2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의원 예비후보 이석문은 ‘교육희망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이 후보는 교육희망 선언문에서 “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희망입니다”라고 천명하였다. 교육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그리고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라는 문구도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장을 지낸 이석문 후보가 결국 교육의원에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이 도의회에 입성하기는 이영길 지부장에 이어 두 번 째이지만 교육의원은 처음이다. 특히 교육의원은 그동안 전직 교장이나 교육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전교조이자 평교사 출신인 이 후보가 그 관행을 깨뜨렸다. 특히 그는 제주4__3유족회 제주시중부지회장을 맡고 있어, 제주4__3교육에도 새바람이 예상된다.
특히 이석문 당선자는 공교육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는 '제로(Zero)화'를 약속했다. 헌법으로 규정된 의무교육을 제주에서 현실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잘못 쓰이는 교육재정을 바로잡고, 지속적으로 확대해 학교운영비와 체험학습비 등 부모들이 부담하는 공교육비를 제로화하겠다고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석문 당선자는 이러한 교육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만큼은 ‘행복한 10년’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행복한 10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쳐 10년 정도는 아이들이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당선자의 표현 방식이다. 교육은 따뜻해야 한다. 교육을 괴로운 존재, 억누르는 존재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4.19 교원노조 운동, 86년 교육민주화 선언, 89년 전국교직원노조의 결성에 이르기까지, 억압적 교육체제를 민주화하기 위한 교사 대중의 가열찬 투쟁은 기나긴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각 곳에서 공동체 교육의 기반이랄 수 있는 공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로 교육을 압도하려 하고 있다.
이석문 당선자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주교육, 지방정치에 희망을 주고,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만큼은 확고하다. 현대는 ‘통치’가 아닌 ‘협치’, 즉 ‘거버넌스’의 시대다. 그의 당선은 도정이나 도의회의 ‘통치’ 시스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도민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협치해 합리적인 정치적 결과물을 생산해 달라는 절실한 요구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