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機智)’와 ‘큰 꾀’의 차이
“거짓말이 외삼촌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벼운 거짓말이 때론 외삼촌의 도움보다 낫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 거짓말을 무작정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한 줄의 거짓말이 세계를 뒤흔드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고 박종철군 사건은 거짓말이 일국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다.
▶ ‘외삼촌’을 빌지 않더라고 작은 꾀가 쓸모가 있다는 얘기는 고사에도 나온다. 한편의 기지(機智)다. 진(秦)의 소왕(昭王)이 맹상군(孟嘗君)을 붇들어 두고 죽이려 했다. 위기를 느낀 맹상군은 왕이 총애하는 첩에게 구명운동을 했다. 첩은 흰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을 댓가로 요구했다. 맹상군은 고민에 빠졌다. 값이 천금이나 되고 천하에 둘 도 없는 그 옷은 왕실 곳간에 비밀스럽게 보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맹상군의 부하가 한밤중에 개의 흉내를 내어 궁중창고로 들어가 그옷을 훔쳐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후회한 소왕은 맹상군을 잡아들이라고 명한다. 이미 풀려나 성근처까지 달아난 맹상군은 닭이 울어야 관문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새벽이 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때 식객 가운데 어떤 이가 닭울음을 흉내내 병사들이 날이 밝은 줄 알고 관문을 열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鷄鳴狗盜)
▶다음은 큰 꾀를 부리면 주변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고사다. 진(晉)나라 문공은 성복이라는 곳에서 초나라와 일전을 하게 됐다. 그러나 초나라의 병사의 수가 아군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해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속임수를 써보기로 했다. 그러나 유능한 부하 하나가 극구 말렸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도무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이다.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의 방법일 뿐이다.”(竭澤而漁)
▶도내 씨돼지 농장에서 해서는 안 될 백신 접종항체가 발견돼 업계가 벌집을 쑤신 듯 발칵뒤집혔다. 누군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연못의 물을, 다른 물고기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모두 퍼내어 버렸다. 그 행위도 괘씸하지만, 더 가증스런 것은 백신을 접종했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속임수가 영원한 해결책이 아닐진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