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라쿠아디아와 김귀옥 판사

2010-05-23     제주타임스



뉴욕 허드슨 강변 라쿠아디아 공항 이름은 비행기추락사고로 순직한 라쿠아디아 시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빵을 훔치다가 발각되어 잡혀온 범인에 대한 판결은 라쿠아디아가 법관시절 심금을 울린 명 판결 중이 하나이다.

범인의 진술이 가족들이 굶어 죽게 되서 어쩔 수 없이 훔치게 되었다고 하자, 아무리 굶주려 죽게 될망정 실정법을 위반한 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면서 벌금 10달러를 선고하고선 벌금을 대납해 준다.

그러면서 방청객 여러분에게도 죄를 묻겠다며,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 죄로 각자 벌금 5달러를 납부할 것을 선고하였다.

라쿠아디아는 이 판결로 모인 돈을 잡혀온 범인에게 주면서 하루속히 자립하도록 권고했다고 한다.

라쿠아디아의 명 판결은 미국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그가 법관생활을 접고 뉴욕시장에 당선되어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순직한 후에도 미국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존경받는 인물로 새겨지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이 법은 공평과 정의의 잣대로 움직여야 한다.

또한 법관은 법 감정 이전에 휴머니티를 간직해서 처벌보다는 개전(改悛)에 목적을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들이 200여명이나 접대의혹에 휘말리어 사법개혁이야기가 나돌고 특검제 도입을 논의하는 등 법조계주변 분위기가 냉랭한 요즈음, 가슴 찡하게 감동을 준 판결 소식은 대한민국에 라쿠아디아가 살아 돌아온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달 초 서울서초동 가정법원 청사 소년법정, 오토바이 절도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은 16세 소녀는 십여 차례 절도행각으로 인해 보호시설 보호처분을 예상하고 잔뜩 움츠려 있었다.

재판관인 김귀옥 부장판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피고인을 불러 세웠다.

“자, 나를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이외의 주문에 머뭇거리며 소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라 말하자, 큰 소리로 따라하도록 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법정에는 부장판사와, 부장판사를 따라 외치는 소녀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부장판사를 따라 큰 소리로 외치던 소녀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외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광경 앞에 소녀의 어머니도, 제판진행을 돕던 보조요원들도 모두 울려버렸다.

이 소녀는 작년 초 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미래가 돋보이는 모범 학생이었으나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후유증으로 삶이 바꿔졌다.

소녀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났으나 반신불수가 되었고, 소녀자신은 죄책감으로 학교생활을 겉돌면서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며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김 판사는 법의 논리에 따라 심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쉽사리 가해자라고 말하겠어요.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죄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불(不)처분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소녀를 법대(法臺) 앞으로 가까이 불러 세웠다.

“얘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고는 두 손으로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다.

“마음 같아선 너를 꼭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사이에 법대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 밖에 못 해주겠구나.”

김 판사는 상처로 인해 자신을 추스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소녀에게 재활 할 수 있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 보다 더 가슴 찡한 명 판결이 어디 있으랴 싶다.

아마 소녀의 마음속에는 판사가 심어준 존재가치와 자신을 추스르고 올바로 살아야 되겠다는 삶의 의지가 각인되었으리라고 본다.

법정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이 사회에 짙게 드리운 회색구름을 말끔히 걷어내 주는 것 같다.

나는 소녀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멋지게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일어나라 소녀야, 다시 한 번 걸어라. 고뇌 찬 인생을 뒤로하고 힘껏 날아올라보렴.

강  선  종
총괄본부장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