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제88회 어린이날에 돌아보는 ‘어린이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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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회 어린이 날이다.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민주시민으로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가꾸기 위해 만든 기념일인 것이다.
오늘 어린이날을 맞으며 이러한 어린이날 제정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 어린이날 제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어린이들이 시달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존엄성보다는 부모나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어린이들이 길들여지고 어린이의 의사에 관계없이 끌려 다니고 있어서다.
어린이날 제정은 어린이날 하루만 어린이를 보살피기 위한 날은 아니다.
어린이날 하루만 선물이나 사주고 외식시켜주고 놀이동산에나 데려다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정말 어린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들이 관심을 갖고 여건을 만들어 주라는 뜻으로 제정된 날인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날을 맞아 어른들은 이러한 어린이날 제정 취지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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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떠 올릴 필요가 있다. 1957년 2월 처음 제정하고 1988년 제66회 어린이날을 기해 다시 공포한 ‘어린이 헌장’은 전문과 11개 항으로 되어있다.
여기에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고 했다. 헌장 제1항에서다. 고른 영양섭취와 질병예방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고 문화전승과 창조의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도 했다.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시설과 공간을 제공받고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서로 돕고 책임을 다하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해로운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하고 학대나 버림을 받지 말아야 하며 나쁜 일과 힘든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
심신장애 어린이에 대한 필요한 교육과 치료, 빗나간 어린이에 대한 선도도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 한국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일류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도록 어른들이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어린이 헌장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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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의 현실이나 사회 현상은 이러한 어린이 헌장과는 딴판이다.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른 교육보다는 부모의 욕심으로 어린이들은 심신이 찌들고 있다.
공부가 먼저고 1등을 위한 경쟁교육이 어린이들의 정서를 삭막하게 하고 서로 돕기 보다는 경쟁으로 미움과 증오의 씨를 뿌리고 있다. 예절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실종돼 버렸다.
그러니 어린이들이 어떻게 질서와 예절을 배우고 다듬을 수 있겠는가.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오히려 이러한 환경에 가장 먼저 노출되어 있다.
학교공부 외에 3~5개의 교습학원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한 기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민주시민사회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빤짝 하루 어린이날 행사’보다는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들의 대오각성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