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출사표(出師表)의 계절
화신을 시샘하는 듯 내습했던 꽃샘추위도 오묘한 사계의 섭리에 봄의 품안에 화사하게 녹아들었다. 여느 때처럼 한 해가 시작되는 새봄은 희망이요 계절의 여왕이라 했다. 하지만, 올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상춘의 풍류도 잊어버린 듯 여유 가 없어 보인다. 지역마다 선거철을 맞아 사회분위기가 들떠있는,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봄날이다. 출사표의 계절, 선거철이어서 그렇겠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지만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에 전선이 따로 없다.
정당과 이익집단의 권력쟁취를 위한 총력전이 숨 가쁘게 전개되는 있다. 진정한 지역일꾼임을 자임하며 선거전에 출사표를 낸 후보자의 출마의 변. 큼지막한 현수막을 건물벽면곳곳에 내걸고 얼굴 알리기에 혈안인 후보자들. 군상들을 찾아 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자의 모습에 어쩌면 애절함까지 서려있다. 유권자를 잘 섬기겠다는 후보자들의 초심이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그래 선거일까지는 유권자가 왕이 아니던가. 득표를 위해 동분서주, 촌음이 아까운 후보자들에겐 하루해가 무척이나 짧겠지.
출사표란 중국 삼국시대에 처음 유래되었다고 한다. 촉나라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 공격에 앞서 촉한의 황제유선에게 올린 글에서 연유한다. 출사표는 전쟁에 군대를 출동시키는 신하의 뜻을 임금께 올린 상주문(上奏文)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거전에 나서는 후보자의 출발쯤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전적인 출사표가 전쟁에 나서는 신하의 뜻을 임금께 아뢴 것이라면, 현대적 출사표는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가 출마의 변을 유권자에게 밝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후보자는 주민대표와 공복의 자질과 능력을 겸비해야 되며, 그 직위에 맞는 여러 덕목을 충족해야함은 물론이다. 현대적 출사표는 주민에 대한 무한봉사, 정도(正道)의 정치, 국궁진췌(鞠躬盡?),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의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전쟁이나 선거는 어쩌면 상생이 불가한 제로섬게임이다. 전쟁이 작전과 무력으로 승패가 좌우된다면, 선거는 선거운동에 의한 유권자의 선택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선거운동에 있어서는 진력을 다하고 방법은 페어플레이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선거풍토는 오직 당선만을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 혼탁한 선거문화의 연속이었다. 금품살포, 흑색선전, 마타도어수법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신념과 도덕성, 정책결정·추진능력, 리더나 대표로서의 자질을 보고, 신중히 선택해야한다.
선거는 민주주의 시작이며 꽃이고, 민주발전의 초석이며 원동력이다. 주민참여 없이는 민주주의 발전도 없다. 혼탁한 선거문화는 유권자들의 외면과 냉소주의를 만연시킨다. 이제 지역대표를 선출함에 있어,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한 단계 더 높은 정치의식과 현실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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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익 순
제주시 이도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