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주례 이야기
주례(主禮)는 어떤 예식을 주재하여 진행하는 사람을 이른다. 그러나 보통은 결혼식을 주관하는 이를 주례라 부르고 있다. 주례는 이제 막 새 출발을 하는 부부에게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기 까닭에, 참으로 고민스러운 처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주례의 조건부터가 까다롭다. 평소의 행동과 가족관계·사회생활 등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아울러 덕담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는 경륜과 덕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주례는 결혼의 성립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더불어 그들의 앞날을 지켜보며 계속 지도해야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욱 맡기 어려운 자리이다.
이처럼 막중한 주례를 자처해서 나설 사람이 정작 얼마나 될 것인가. 언필칭(言必稱) 사회 저명인사이거나 성직자가 아니면 감히 주례를 수락할 사람이 흔치 않을 터이다. 더구나 요즘은 선출직 공직자의 결혼식 집례(執禮)가 제한되어 있어 주례를 부탁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주례 없는 결혼식은 아직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주례는 어쨌든 선정해야 하고 또한 누구든 주례를 맡아 주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잘 잘못이 있게 마련이고 실패와 좌절, 영욕(榮辱)을 함께 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만인의 숭앙과 칭송을 들으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자라 할지라도 크게 허물이 없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면 주례로서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해서 주례 청탁을 받는 사람도 너무 사양하지 말고 흔쾌히 승락해 주는 것이 모처럼 새롭게 탄생하는 부부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결혼식의 핵은 그 날의 남녀 주인공 앞에서 행하는 주례사이다. 주례사는 먼저 결혼의 의의와 당위성, 그리고 가정생활에 있어 필요한 도움말이 주 내용이 된다.
부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명확한 정의(定義)는 역시 성경이다. 사랑은 “시기(猜忌)도 교만(驕慢)도 자랑도 하지 않고 성내지도 무례(無禮)하지도 아니 하는 것, 그래서 언제나 온유(溫柔)하고 기뻐하며 믿고 참으면서 감싸주는 것”이다.
다음은 효도이다. 자기 둘만 희희낙락(喜喜樂樂)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知恩), 감사하며(謝恩), 항상 그 넓고 높으신 은혜에 감사하는(報恩)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녀도 가능한 한 여럿 두는 것이 좋다. 예부터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을 단란한 가정이라 하였다. 아들 딸을 훌륭하게 키워 인류사회에 공헌토록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적으로도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근검절약(勤儉節約)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한다. 예기치 못할 난관과 역경에 대비하여야 하고, 노후도 준비하여야 한다. 최소한 불우 이웃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심리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게 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튼튼하여야 한다. ‘돈과 명예를 잃는 것은 인생의 일부를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부부가 서로서로 건강에 유의함으로써 백년해로하며 일생을 다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아마 주례사는 대개 이와 같은 줄거리를 중심으로 전개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의 덕담을 하는 주례 자신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는 있다. “주례도 사람이다. 다만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논설위원 이 용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