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살아있는 미국 역사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김수영의 시 「가다오 나가다오」의 마지막 연이다.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반미의식과 통일지향을 담아낸 문학작품들이 나타났다. 김수영,신동엽,이호철의 작품들에서 한국에서의 반미의식은 민족의식의 성장과 정비례해서 고조되었다.
우리는 미국의 실체를 예사로 보아 넘길 때가 있다. 미국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달 심장마비로 숨진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의〈미국 민중사〉를 읽다보면 미국에 대해 아이러니를 더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전쟁이다. 당시 북부의 자본가들에게 남부의 막대한 영토와 자원은 군침이었다. 북부를 대변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중요한 것은 노예해방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남부의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였다. 이 전쟁으로 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링컨을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만 알고 있다. 당시 링컨이 한 신문기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이 분쟁에서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연방을 보존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도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대로 노예를 해방시켜야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미국 민중사>는 기존 미국사의 시각과 방법론을 완전히 뒤바꿨다. 그리고 전세계 진보진영의 대안교재가 됐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콜럼버스의 인디언 사냥이 첫 장을 시작하며, 하워드 진은 강자나 지배자가 아니라 인디언·흑인·여성·노동자 등의 저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다. 하워드 진은 역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보았다. 노동자, 농민, 흑인, 여성, 이주민, 인디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미국민중사>는 콜럼버스가 아이티에 상륙해서 원주민을 약탈, 학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항해자이자 발견자로서 콜럼버스와 후대 계승자들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하고 그들이 저지른 인종 말살을 무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이미 벌어진 행위를 자기도 모르게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황금을 찾아 아메리카에 왔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배에 황금을 대신할 무언가를 채워야만 했다. 그러한 이유로 대규모의 노예사냥이 이루어졌다. 결국 그들은 스페인으로 이송할 500명의 노예를 포획했다. 그 가운데 200명은 향해 중에 죽었고, 살아서 스페인에 도착한 나머지 인디언들은 한 지역 교회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잘 팔릴 만한 노예를 계속해서 공급해주자” 하워드 진은 고통 받는 다수의 연대의 가능성과 실패의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 그 사례가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흑인 노예와 백인 노예의 연대가능성이다. 그러나 고통 받는 다수의 연대는 실패하고 만다.
여기서 제주도민들은 제주4__3과 미국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제주4__3 발발과 진압과정에서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사건은 미군정하에서 시작됐으며, 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후에도 한미간의 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하였고, 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를 지원하였다. 특히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켰던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하는 한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활동상을 대통령의 성명 등을 통해 널리 알리도록 한국정부에 요청한 기록도 있다.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김남주 시인의 가장 짧은 「쓰다만 시」 전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개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라는 「다 쓴 시」라는 시도 썼다. 작가 남정현은 반미소설 「분지」를 1965년에 발표하고, 그 때문에 모진 고문과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지금도 미국시대가 아닌, 우리시대를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