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여행자

2004-11-22     고창일 기자

한 여행자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찾아 왔고 피곤한 여행자는 천막을 치고 몸을 눕혔다.
일교차가 큰 사막 기후라 추위를 느낀 여행자는 문득 밖에 있는 낙타가 걱정스러웠다.

그렇지만 저 큰 덩치가 천막에 비집고 들어오면 좁고 불편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여행자는 모른 체 하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고 온도가 더욱 내려가자 이번에는 낙타가 주인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추워 못 견디겠어요. 발하나만 천막 안으로 넣을 게요"
발 하나 쯤 이야 하는 마음에 여행자는 낙타의 사정을 받아들였다.
조금 있으려니 낙타는 또 "나머지 발도 좀..."이라고 애원했다.
한번 터진 물꼬인지라 여행자는 발에 이어 꼬리, 머리 등 순으로 낙타의 제안을 허락했고 가장 추운 새벽녘에는 몸통전체가 천막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여행자는 당초 우려대로 밖으로 내 몰릴 수밖에 없었고 낙타에게 "나와라, 내가 들어가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힘세고 덩치 큰 낙타는 들은 둥 만 둥 따뜻한 천막안에서 코만 골뿐이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의 우유부단함을 꾸짖는 비슷한 고사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이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의 양공은 초(楚)나라와 전쟁에 나섰다.
강을 건너는 초나라군대에 대해 장군 공자목이(公子目夷)가 송양공에게 "적이 강을 반쯤 건널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진언했다.

양공은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거절했고 , 또 다시 "적이 진용을 가다듬기 전인 강을 건너자 마자 치면 대승을 거둘 수 있다"는 건의에도 양공은 "군자는 어려움에 있는 상대를 괴롭히는 법이 아니다"라고 우물거렸다.

그 결과 송나라는 초나라에 크게 패했고 세상사람들은 이를 비웃어 송양지인, 즉 양공의 헛된 너그러움이라고 했다.
최근 한진그룹이 제주산 생수를 시판할테니 '허락해 달라'고 제주도에 요청했다.
그들의 명분은 '개발공사가 해외시장에 취약한 만큼 이를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낙타가 발하나만 넣겠다는 모습이다.

만약 제주도가 한진그룹의 제의를 과감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업체측 사정을 감안하고 절충안을 모색한다면 그것 또한 나라를 망친 송나라 양공의 물러터진 대처와 진 배 없다.
제주도의 첫 손 꼽히는 천연자원 '제주 생수'가 제주도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재삼 확인할 필요까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