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먹고 살기 힘든 세상

2010-01-03     제주타임스


지난 세밑은 너무 우울했다. 겉치장은 화려한데 곳곳마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정부는 경제가 나아진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정부도 가계도 빚으로 살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는 빚을 내 재정지출을 확대했고, 먹고살기 힘들어진 가계는 생계형 대출을 늘렸다. 국가채무는 질적으로 악화됐고, 가계도 소득이 제 자리 걸음을 하면서 상환 능력이 더욱 취약해졌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366조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정부가 당장 쓸 돈이 부족해 국채발행으로 충당한 적자성 채무는 지난해 168조3000억 원으로 1년 만에 35조7000억 원 늘어났다.

그 즈음에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녀석은 막무가내로 아버지는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아, 벌써 선거철인가? 그런데 왜 서울에서부터 난리인가? 그렇구나, 올해는 지방선거의 해이구나. 연말 신문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연초신문도 읽었다. 다시 아들이 질문이 이어졌다. 가난한 도민들을 위하여 아직까지 진정한 지도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진보적인 인사를 찾아야 합니다. 아아, 물론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가 더욱 문제이다. 작년 말 겨울방학부터 급식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도내 저소득층 아동은 무려 500명이 넘는다. 제주도가 아무런 대응책도 없이 강화된 정부지침을 이번 겨울방학부터 그대로 적용, 기존에 급식지원을 받던 저소득층 아동들을 지원대상자에서 제외시켜버렸다. 실제 제주도는 대상자를 차상위계층 이하로 제한한 보건복지부의 ‘2010년 아동급식 사업안내 지침’에 따라 겨울방학 급식 대상자를 지난 해 1만38명보다 무려 545명이 적은 9493명으로 확정해 버렸다.

말이 나왔으니 더 거들어 보자. 제주에는 2만여명 이상의 극빈계층과 2500여 가구 이상의 한부모 가정이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으로는 최저 생계비·주거비·교육비 등을 위해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지급되고 있는 정도이다.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제주지역 자살자 수도 686명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102명, 2005년 174명, 2006년 104명, 2007년 162명, 2008년 144명으로 조사됐다. 거의 3일마다 한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생계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가계부채는 빚더미에 오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계가 갚아야 할 빚의 총액을 나타내는 가계신용 잔액은 작년에도 꾸준히 증가해 처음으로 710조원을 넘어섰다. 가구당 빚은 4200만원을 돌파해 1인당 1462만원 꼴로 빚을 떠안은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 빚에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커지고 있다.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들이 생계형 대출을 늘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가계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부채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가 빚을 갚느라 휘청거릴 수밖에 없어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라는 말도 나온다. 빚더미에 깔린 서민들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살아도 지옥, 죽어도 지옥’인 상황이다. 부채가 더 늘면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가계 파산, 금융사 부실 등이 우려된다

며칠 전 직장인들이 2009년을 결산하는 사자성어로 ‘구복지루(口腹之累·먹고 살 걱정)’를 꼽았다.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으면 구복지루라고 했을까.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도 올 1~9월 중 13.0%를 나타내 8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엥겔계수는 소득이 늘면 낮아지고 생활형편이 나빠지면 올라간다. 이 수치가 200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사실은 일반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가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 가장 악화됐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가계의 명목 국내 소비지출액은 408조8221억원,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품 지출액은 53조38억원이었다.

빈곤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나타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문제로서의 빈곤은 자본주의 자체의 소산이다. 또 빈곤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진전과 함께 오히려 사회 그 자체에 있다. 노동력 이외에 생산수단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계급이 성숙하는 가운데 극빈 과잉인구가 누적되어 방대한 침전층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런 빈곤자의 생활은 매우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육체적·정신적 황폐현상을 가져오며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제도적으로 격리되어 은폐되고 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