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순이와 국력
삼순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식순이․공순이․차순이로 불린 세 가지 직업을 합친 약칭이다.
1950년의 6·25 전쟁을 시작으로 50년대엔 식모살이하기도도 어려웠다. 식모살이하는 이들이 식순이다.
공순이는 1960년대 산업화시대의 여공들이다. 노조가 있었던 시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인권부재 속에서도 열심히 일해 가며 돈을 모은 알뜰한 사람들이었다.
차순이는 버스안내양이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버스 안내는 차순이들이 도맡았다.
특히 시내버스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면 승객들로 버스가 미어터졌다. 정류장마다 그 많은 승객들을 하차시키고 승차시키면서 곡예를 하기가 일쑤였다. 차순이마다 몸으로 승객을 밀어붙여 가까스로 태우고는 자신은 승강대에 매달린 채오라이!소리와 함께 차체를탕! 탕!손으로 두드리고는, 운행 중에 틈새를 만들어 들어가 차문을 닫는 개문발차가 다반사였다. 대개 스무 살 미만이었던 차순이들은 가난으로 배울 때 못 배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 같은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삼순이는 근대화의 역군들이다. 오늘의 경제기반에는 이들의 피땀이 푹 배어 있다.
중학교진학률 20%도 못되던 나라가, 1인당국민소득 100달러도 못되던 나라가, 세계 최빈국 대열에 섰던 나라가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84)%)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삼순이를 모두 보아온 세대로써 흐뭇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우리의 과학기술이 중국을 멀리 따돌리고 일본을 따라잡아 일본이 독도망언 못하고 중국과 일본이 역사왜곡 꿈도 꾸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 병 연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