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행정이 기가막혀
“우리 의원들이 전국을 다니며 국정감사를 하고 있지만 이곳처럼 조는 직원들이 많은 곳은 처음 본다. 도대체 직원들 기강이 얼마나 빠져 있길래 절반 이상이 졸고 있나?” 이말은 지난달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제주도에 대한 국정감사자리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김태환 제주도지사를 향해 한 말이다. TV 모니터를 통해 국정감사장을 지켜보던 기자의 귀를 의심하게 한 말이었다. 전의원의 말이 있기 전부터 도지사 뒤에 배석해 앉아있는 도청 실국장과 과장들의 모습이 어제 밤 숙취가 덜 풀린 듯, 눈을 감고 있거나 멍하니 있는 표정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졸고 있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를 몇 년에 한번 왔다 가면 그만인 국회의원들 폼 잡는 자리로 인식하는 제주도정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지난 20일 제주도의회의 서귀포시 행정사무감사장. 무소속 안동우의원이 모 과장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서귀포시의 2007년, 2008년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 실적을 제출해 달라” “민간부문 일자리 실적은 도에서 자료를 내기 때문에... 서귀포시는 공공부문만 하고 있어서” “김태환 지사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는데 올해도 아니고 2-3년 전의 자료가 없단 말인가. 시에서 파악해 도로 보고해야지, 일자리 창출은 도에서만 하는가”
다른 과장에 대한 질문 “양돈장 냄새민원 저감대책 추진 실적에 한 아세안 기간동안 공무원을 양돈장에 상주시켜 근무조를 편성한 것이 대책으로 나와 있는데 냄새가 국가적 행사에만 발생하고 평소에는 나지 않는가? 행사를 앞두고 냄새 저감 결의대회를 개최한 것을 어떻게 냄새저감 대책이었다며 의회에 자료로 제출할 수 있나? 지역 주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떤 사업에 얼마를 들여 근본적인 조치를 했다고 얘기해야 할 것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다”
민주당 좌남수의원의 질의.
“선박안정법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을 아느냐?” “세세히는 몰라도” “시행규칙 개정의 대상이 되는 관내 어선이 얼마나 되나?” “...” “담당 과장이 관내 대상 어선이 몇척인지도 모르고 있나”
또 다른 과장에게 “서귀포시 지역 오일 시장이 몇 개인가?” “9군데로” “6군데 아니냐. 주무 과장이 어떻게 오일 시장이 몇군데 인지도 모르고 있나. 의원이 질문하고 답까지 해야 하나?”
결국 이날 사무감사에서 좌남수 의원은 이처럼 준비가 덜 된 사무감사는 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감사 중단을 요구했다. 결국 위원장과 다른 의원들의 만류로 감사는 마쳤다. 이날 속기록에 가장 많이 남은 말은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챙기겠다” 였다.
물론 의원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관내 현황을 기억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모든 공무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졸거나 자신의 업무 파악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시도민이 행정에 바라는 것은 누가 다음 선거에 도백으로 올지, 윗사람의 눈에만 들기 위해 애쓰는 시간의 조금만이라도 내어 관내 실정 파악에 신경 써 달라는 것이다. 지역 주민의 눈높이로 자기 담당 업무의 전문가가 되어 주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다음 감사장에서도 행정이 기가막혀 의원들이 허탈해 하기 전에.
김 종 현
기획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