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왜, ‘알뜨르’ 인데?
기원전 중국을 통치했던 주나라 경왕이 어느 날 커다란 종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왕실의 관리였던 주구라는 신하는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낭비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경왕은 종을 만들도록 했다.
큰 종이 완성되자 아부하기 좋아하는 신하들이 종소리가 듣기 좋다며 무릎을 조아렸다.
경왕이 주구를 불러 “모두 종소리 가 듣기 좋다더군”하고 빈정댔다.
주구는 “백성들이 종을 만들고 싶어 해야 종소리 가 듣기 좋은 것이지 그들의 원성이 자자한데 어찌 종소리가 듣기 좋겠습니까. 민중의 마음이 합치면 그 힘은 성벽과 같고 민중의 입은 무쇠도 녹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사례에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바로 중심성성(衆心成城)이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견고한 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여럿이 뜻을 하나로 모으면 못할게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갈등이 말 그대로 갈 때까지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약속’인 정부의 지원근거를 만들면서 알뜨르 비행장부지의 지방양여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강정의 문제’가 밀리고 있다.
▲본질을 벗어난 쟁점
알뜨르 비행장은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로 가는 길목인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의 서북쪽 일대 204만7000㎡의 평야지대다.
이곳에는 일제 당시에 구축된 군사시설인 격납고, 지하벙커, 진지동굴 등이 산재해 있다.
이 일대 토지는 모슬포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농경지나 목초지 등으로 사용해 왔으나 1930년대 후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토지를 강제징발 해 비행장을 조성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비행장을 확장하면서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한 아픔을 간직한 땅이다.
일제가 패전한 이후 미군정을 거쳐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정부수립 후 한국전쟁이 발발 직후인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육군 제1훈련소의 훈련장으로도 사용돼 왔다.지금은 군사시설 기능이 상실한 상태로, 주민들이 임대받아 감자나 마늘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도는 우리 민족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역사·문화·관광 자원화 하기위한 ‘평화대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척박한 토지를 일구며 살아온 지역주민들에게 알뜨르 비행장은 ‘반드시 환원돼야 할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강정’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예정지로 결정된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주민들간 찬·반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조상 대대로 평온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낮선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 등 수천명의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색하고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설촌 이후 좁다란 골목길을 통해 이웃의 정을 쌓으면서 지내온 마을 주민들에게 해군기지 건설은 새롭고, 급격한 변화로의 도전임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 등 모든 문제들은 강정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돼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강정마을 발전계획’이 수립되고 있으나 벌써부터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일부 행정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의 한복판에 있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알뜨르 문제’가 해군기지 건설의 ‘전제조건’처럼 부각 되면서 강정의 불만은 더 고조되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의 무상양여는 모슬포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알뜨르 문제가 강정마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 문제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문제의 근원이 강정마을에 있고, 또 문제의 해결이 강정마을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알뜨르 비행장 문제가 부각되면서 강정마을은 더 허탈해하고 실망하고 있다. 알뜨르에 앞서 강정에서 풀어야 한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