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지 마시오' 표시 유뮤가 관건

전시 작품에 손 댔다가 다쳤을 때 시설 측 책임 범위는?
지법, 7살 어린이 다친 시설 관리자에게 과실 인정

2009-09-21     김광호
관람객이 전시된 미술 작품에 손을 댔다가 다쳤을 때 관람객과 시설 관리인 중 누구에게 과실이 있을까.

“(작품에) 손 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부착했느냐의 여부가 과실을 판단할 가장 큰 기준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특히 이 경우 이렇다 할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의 판결이어서 눈길을 끈다.

제주지법 형사1단독 이계정 판사는 최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서귀포시 모 리조트 시설물 관리 책임자 A 피고인(51)에 대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해 5월24일 오전 10시께 자신이 시설 관리책임자로 일하는 리조트 내 잔디밭 정원에서 돌 조각상을 만지며 놀던 7살 여자 어린이가 조각상과 같이 넘어져 상해(안면신경마비 및 우측 청력장애 등)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피고인이 조각상의 보수 등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점, 사고 당시 잔디 출입 금지나 조각상에 손 대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표지판이 없었던 점 등을 과실 책임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 판사는 따라서 “투숙객이 조각상을 만지는 행위가 예상됐던 점 등에 비춰 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피고인으로서는 조각상을 만지지 못하도록 관리 직원을 배치하거나, 조각상 주변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조각상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표지만 했더라도 피고인의 과실은 없을 수 있었다”고 말해 사실상 ‘손 대지 말라’는 표지판 부착 여부가 이 사건 판단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한편 이 판사는 “피해 어린이가 조각상을 만지는 것을 제지하지 않은 피해자(어른) 측의 과실도 상당하지만, 이는 양형에 고려할 문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