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한번 해병‘을 말하려면
영원한 해병정신의 상징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한번 뱃놈이면 언제나 뱃놈(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라는 영국 속담에서 유례 됐다고 한다.
이것이 미 해병대(U.S MARINE) 명칭으로 채택되면서 해병대 슬로건이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병대(R.O.K.M.C)에서 이 구호는 영원한 해병정신의 상징이다.
‘무적 해병’ ‘귀신 잡는 해병’의 명예와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고 해병대의 일치감을 표현하는 상징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1987년에는 대한민국 해병대 공식 표어로 채택됐다.
현역이든, 군문(軍門)을 떠난 예비역이든, ‘우리는 하나’라는 강한 연대감으로 공유되는 해병 혼과 해병정신의 상징인 것이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은 그래서 해병대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단결과 화합을 강조하는 구호로 인용되기도 한다.
며칠 전(9월8일), 이명박 대통령도 차용해 사용했다. ‘9.3 개각’으로 떠나는 한승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에서였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국가를 위해 헌신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만큼 이 구호는 해병 창설 64년을 점철해온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불굴의 해병 혼이 배어있다. 치열한 해병정신이 뿌리 박혔다.
해병대 사령부 해체 치욕
오늘(15일)은 마침 인천상륙작전 59돌이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국가 위기, 이 때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선봉은 대한민국해병대였다.
같은 해 9월28일 서울을 적치(敵治)에서 되찾아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은 역할도 해병이었다.
지금도 해병대는 국가 안보의 최정예 전략기동부대로서 서해 5도 등 최전방 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모군(母軍)을 생각하는 예비역 해병의 심정은 착잡하다.
정권을 찬탈한 정치군인들에 의해 명예가 더렵혀지고 해병정신이 유린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천덕꾸러기로 이리 채고 저리 채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김포주둔 해병병력은 한강을 건너 서울을 점령함으로써 쿠데타 성공의 견인차 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권련을 잡은 박정희정권은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해 버렸다.
“해병대가 너무 커졌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극비작업 2개월 만에 막강 해병을 공중분해 시켜버린 것이다.
해병의 위력에 겁난 정권의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해병이 해체되던 날인 1973년 10월 10일 10시는 해병대 역사 최대 치욕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한고조 유방에 배신당한 ‘한신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떠오른다.
해병예비역 병장의 소망
해체 된 후 17년만인 1990년, 우여곡절 끝에 해병대 사령부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직도 독립군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인사권과 재정권, 정훈권이 해군참모총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구겨지는 자존심은 또 있다.
소위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는 오는 2020년까지 해병 6여단과 연평부대를 해체하고 해병 병력 4000명을 감축하는 계획이다.
해병은 휴전 후 지금까지 서부전선에서 수도 방위와 서해 5도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병력 4000명을 감축한다면 방어선 약화 등 전력차질이 불가피하다.
정치권력의 안이하고 무책임하고 느슨한 안보의식이 국가 안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해병은 병력감축이 아니라 특수부대 위주로 재편되어야 한다.
독자적 상륙작전 능력 확보, 통일 후를 대비한 미래안보 환경에 맞는 국가 전략 기동부대로 확대 개편되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을 말하려면 최소한 이러한 국가 안보의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인천상륙작전 59돌을 맞는 ‘늙은 해병 예비역 병장’의 소망이기도 하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