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無心之心 '

2009-09-01     제주타임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여”

유대인에게 삶의 지혜를 집대성한 ‘탈무드’가 있듯이 제주사람들에게도 조상들에 의해 구전(口傳)되는 처세훈(處世訓)이 많다.

‘지는 것이 이김이여’도 예부터 제주어른들의 경험으로 농축(濃縮)된 교훈의 하나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제주 말이다.

평소 의지하고 존경하는 의형(義兄)은 조손(祖孫)가정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배우지 못한 그야말로 촌 할머니였다.

그러나 누에 실 뽑아 피륙을 짜듯 생활경험에서 뽑아낸 비단실 같은 아름다운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손자는 이런 지혜의 바다에서 성장했다.

그것이 ‘당당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는 캐릭터’의 바탕이었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의형의 자산은 이 같은 할머니의 경험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지는 것이 이김이여’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할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회고 했다.

자신이 쓴 칼럼에서다.

잠시 옆길로 빠졌지만 오늘 이야기의 한 꼭지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찬란한 슬픔’, ‘달콤한 이별’, ‘침묵의 아우성’ 같은 모순어법이지만 여기에는 논리체계를 뛰어넘는 역설의 미학의 배어있다.

경험에서 터득한 보석처럼 빛나는 삶의 지혜가 알알이 박혀있는 것이다.

그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다.

상대에 대한 양보와 배려, 용서와 화해의 미덕이며 부드러움 속의 강한 힘이다.

아름다운 양보의 미덕

수도(首都)로 결정되어 얼마 안 된 워팅턴, 비만 오면 온통 진흙탕 길이었다.

길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한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널빤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 널빤지 건널목 중간쯤에서 평소 앙숙관계인 두 미국 하원의원이 만났다.

‘존 란돌프’와 ‘헨리 그레이’었다.

둘 중 누군가 진흙탕 길에 내려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존’이 먼저 이를 악물었다. “나는 악당에게는 길을 비키지 않습니다”. 고집스럽고 강경한 말투였다.

그때 ‘헨리’가 성큼 진흙탕 길로 내려섰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악당에게는 길을 비켜 줍니다”.

어느 쪽이 악당이 되었고 누가 얼굴 붉혔는지는 설명이 필요가 없다.

‘양보의 미덕‘을 말할 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강조 할 때,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가끔 인용되는 삽화(揷話) 한 토막이다.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대개는 강하던 버티던 이빨도 빠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老子)가 말했다.

“혀는 부드러움으로 해서 오래도록 온전하고 이는 강함으로 해서 빨리 망가지는 것”이라고.

세상살이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참’인지는 헤아리기가 힘들다. 오히려 목소리 큰 쪽이 부드러움 앞에서 꼬리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욕망과 번뇌를 비우는 마음

마침 주말에는 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읽었다. 표제가 ‘일기일회(一期一會)’였다.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뜻이라 했다.

의형(義兄)의 권유에 게으름 피다 비 날씨에 이끌려 책장을 넘겼다.

거기에서 무심지심(無心之心)을 만날 수 있었다. 옛 선사의 법문이었다.

 ‘항하(겐지스강)의 모래는 소나 양, 벌레 들이 밟고 지나갈지라도 조금도 화내지 않고 진기한 보배와 향료가 쌓여도 탐내지 않으며 똥 오즘의 악취에도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무심을 통달한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을 비우는 마음’ ‘욕망과 미움과 질투와 번뇌를 비우는 마음’이 ‘무심지심‘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법정 스님은 세상일에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라고 했다. 세상일에 참견 말라는 것이었다.

아옹다옹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 말고/ 산이든 물이든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 세계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것을(是是非非 都不關/山山水水 任自閑/莫間西天 安養國/白雲斷處 有靑山).

소환투표다 뭐다하며 극단을 치닫는 제주지역의 갈등구조와 상대를 밟고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막가는 시대 상황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시골할머니의 생활의 지혜와 법정스님의 무심지심을 엮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