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한시름 놓았는가.”
세상 돌아가는 게 하도 아리송해서 자네에게 진작 글을 쓰는 걸 머뭇거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네. 그러니까 지난 시월 어느 날,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 헌재에서 위헌결정 나던 날이었네. 수도이전을 결사반대한다고 침을 튕기던 자네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더군.
자네가 그토록 수도사수에 열을 오린 결과라고나 할까, 서울은 육백 년 고고한 전통을 탈 없이 견지하게 되었으니 “자네 한시름 놓았는가.” 자네가 그토록 서울이 살기 좋다고 침을 튕기는 이유를 얼추 짐작은 하네. 자네의 수도사수 이유 중 하나가 자네가 갖고 있는 몇 채의 아파트 값과 무관치 않다는 것을….
자네가 무슨 큰 뜻이 있어서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게 아니고 고작 서울에 아파트 몇 채 갖고 있다고 수도이전 반대대열에 앞장서는 걸 보며 입맛이 떨떠름한 게 꼭 풋감 씹은 기분이었네. 수도이전에 대한 말이 나오면서부터 아파트 값이 떨어질 거라고 한숨쉬던 자네가 아닌가.
자네 헌재의 위헌결정이 그렇게도 좋던가. 자네도 승리를 외쳤는가. 위헌결정이 나는 순간 우연찮게 텔레비전을 보았네. 그 때 자네가 존경하는 서울특별시장이 위헌결정은 서울시의 승리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승리라고 파안대소하는 걸 텔레비전이 비쳐주더군. 얼마나 기뻤으면 양손을 버쩍 들고 국민의 승리라고 소리 높이 외쳤겠는가.
그런데 그 소릴 들으며 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었네. 서울시장이 파안대소하는 것까지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국민의 승리라는 말은 아니 들음만 못하다고 수군거리는 걸 들었네. 서울시의 수장이니 서울시민의 승리라면 모를까, 거기다가 국민은 왜, 끌어드리는가. 국민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막 써도 되는 거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음이야.
하기야 수도를 옮긴다는 말에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던 자네가 아닌가. 시장도 장외투쟁을 독려하던 판국이었으니 국민의 승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 마침 위헌결정이 나는 그 날, 그 시간에 자네가 입술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자네 지역 출신인 야당의 중진의원도 위헌결정을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걸 보았네.
자네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의기 양양해하는 모습이 꼭 마을대항 조기축구에서 한 꼴 먼저 넣은 팀의 양상과 비견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그 때 양손을 번쩍 들고 승리를 외치는 사람들에겐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었어. 그 순간만은 개선장군이 부럽지 않는 듯했네. 작은 승리든 큰 승리든 이긴 자의 심정은 다 같은 게 아니겠나.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헌재에서 위헌결정을 받은 그 법이 어떤 법인가. 국회의원 분포가 여소야대 시절에 통과된 법이 아닌가. 국회를 통과한 법이 헌재에서 위헌판정을 내렸는데, 그 법을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던 국회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며 이런 때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써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네.
자기가 통과시킨 법이 위헌결정이 나길 바라는 국회의원을 자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말로 알쏭달쏭한 세상이야. 국회의원에 대하여 무지렁이 농투성이가 뭘 알겠나마는 그래도 자기가 통과시킨 법안이 위헌판정이 내려지는 순간만은 숙연한 자세로 겸허한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자네의 수도사수를 경하하네. 언제 소주 한 잔 사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