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대중 前 대통령 國葬 그 후…

2009-08-23     제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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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엄수됐다.

이로써 파란만장한 86년간의 생애를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영면(永眠)하게 됐다.

이제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넘어간 셈이다.

훗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시대의 큰 거목(巨木)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해서가 아니다.

교황이 애도를 표하고, 북한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조문사절단의 조문을 받았다 해서도 아니다.

외신(外信)과 외지(外紙)들이 일제히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때문은 더 더욱 아니다.

도리어 이러한 예(例)들은 거목 김대중에 대한 피상적 표현의 일단(一端)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차라리 빈소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의 추모 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함을 함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나라사랑의 그 마음, 우리 모두 오래 기억 할 것이다.”

그리고 분향 한 많은 조문객들의 마음속에도 김 전 대통령의 위대성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선거 때 “찍어드리지 못해 후회스러워 빈소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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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성은 애국-애민(愛國-愛民)과 평화, 인권, 민주주의-의회주의를 위해 평생 목숨을 걸고 몸을 던져 왔다는 데에 있다.

그가 천명한 “행동하는 양심” 말이다.

바로 이점이 군사정권 시절 20여년 이상을 독재 정권에 빌붙어 국민을 탄압하고 권력을 누리던 정치지도자와 크게 다르다.

또한 말로만 애국-인권-평화-민생-민주주의를 외칠 뿐 실천할 줄 모르는 우리나라의 요즘 일부 정치지도자들과도 다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은 두 번이나 죽음 앞에 서야 했다.

 군사정권이 그를 현해탄에 던지려 했고, 사형수로 만들기도 했다. 정치보복에 의한 고문과 옥살이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는 외국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암울했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설사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도 이렇듯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쟁취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만으로도 이미 위대한 정치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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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1997년 대통령에 당선,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집권기간 재야시절과는 또 다른 업적들을 남겼다.

이른바 ‘햇볕 정책’을 써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퍼주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은 남-북 정상회담 실현, 금강산 광광, 개성공단 조성, 이산가족 상봉 등의 기틀이 되었다.

비록 그는 경제대통령을 자칭(自稱)하지는 않았지만 국가부도 직전에 이른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 세계의 놀라움을 샀으며 외교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내치(內治)에 있어서도 의약분업(醫藥分業) 등 큰 반발이 뒤따르는 어려운 사업들을 정착시켰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계파 정치, 지역분열 등 부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분열의 경우 그는 원인 제공자라기보다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 그를 국장으로 떠나보낸 뒤의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우선 지역감정을 없애고 통합하는 일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가 동서로 다시 나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화합하고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그 다음 문제가 역시 남북문제다.

화해 협력을 더 이상 후퇴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퍼주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비핵화를 실현 시키면서 화해-협력-평화로 갈수 있는 정치력을 남아 있는 정치인들이 발휘해야 한다.

경제회복, 민생 해결 등 기본적인 일들이야 누가 얘기하기에 앞서 당연한 위정자들의 몫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