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1훈련소 軍藝隊건물 보존하라
1
대정읍 모슬포의 옛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軍藝隊) 건물이 헐릴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서귀포시 도시계획도로 확장 사업 탓이다.
이 건물은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던 6.25한국전쟁 당시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장병들을 위해 가수-배우 등 연예인들이 1951년에 창설(創設)한 군예대가 기거하면서 활동하던 본거지였다.
군예대 창설 장소가 바로 이 건물 2층이었다.
최전선 투입 직전의 훈련병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여 주기위해 이곳에서 활약한 연예인들은 모두 당대의 명배우요, 유명 작사-작곡가-가수들이었다.
황해, 주선태, 구봉서, 박시춘, 유호, 남인수, 황금심, 신카나리아 등이 그들이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작 ‘삼다도 소식’은 바로 여기에서 작사-작곡되고 또한 여기에서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예대 연예인들은 물론, 훈련소 장병들과 가족들 입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한 때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2
이뿐이 아니다. 수많은 군가들이 바로 여기에서 만들어져 병사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크게 고취시켜 주었다.
‘제1훈련소가’ ‘전우가’ ‘제5연대가’ ‘제6연대가’ 등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제5~제6연대가는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재조사 작업을 벌여 찾아내야할 군가다.
이렇듯 군예대의 자신들을 희생한 활동은 병사들이 전공(戰功)을 세우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전란에서 조국을 구하는 데 한 몫을 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쟁사의 한 장면을 역사에 증언해 줄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의 활동무대였던 목조 2층 건물을 허문다니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도시계획상의 도로 확장 사업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특히 이 목조건물은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서 이미 건축 역사가 100년을 헤아리고 있다. 당시 제주도는 이만한 근대 건축물이 희소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예대 무대가 아니라 제주 지방의 근대 건축사적 의미에서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아진다.
3
마침 대정역사문화연구회, 대정역사문화 해설사회, 대정읍 재향군인회 등 지역 관련 단체들도 최근 제주도 당국에 모슬포의 옛 군예대 건물 철거 계획을 백지화해 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고 한다.
제주도 당국은 비단 이들의 청원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이 건물을 철거하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개인 소유인 이 건물을 제주도가 매입, 지방문화재로 지정해야 옳다. 그래서 주변을 잘 정비해서 보존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삼다도 소식’노래비도 세우고, 군예대 기념비도 세워 당시 연예인들의 활동상을 후세에 전하는 일도 필요하다.
군예대 건물 정비 여하에 따라서는 훌륭한 교육-관광자원으로의 활용가치도 높을 줄 안다.
서귀포시 관계자의 얘기로는 “건물의 원형이 훼손 된데다 도로 확장을 위해 소유주와 보상협의가 끝났고, 문화재로 등록이 안됐기 때문에 철거 백지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지 않다. 원형 훼손은 복원하면 되고, 보상협의가 끝났으니 매입하면 되고, 문화재 미등록은 등록하면 된다.
그리고 도로 구획선은 모양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변경하면 될 것 아닌가. 2002년 12월 문화재 위원들의 근대문화 유산 조사에서도 이 건물에 대해 “장래 지역근대시기를 나타내는 좋은 유산”, “행정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내렸었다.
당국은 이 건물을 행정 편의주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결단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