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후탈에 밀린 ‘소심인사’
조선시대의 성군(聖君)을 꼽으라면 대부분은 주저함 없이 세종대왕을 꼽는다.
최근에는 사극의 영향을 받아 정조를 꼽는 수도 늘고 있다.
세종은 어린시설 아버지 태종 이방원 시대의 피로 얼룩진 권력투쟁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이 과정에서 세종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나라를 경영하는 출발로 삼았다.
백성에게는 한없이 따뜻했지만 권신들에게는 엄격했다.
무엇보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재주 있고 행실이 바른 인물을 발탁해 나라의 동량으로 키우는 일에 힘썼다.
요즘하는 흔한 표현대로 인재 풀을 넓히고 교육입국의 기초를 튼튼히 한 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세종은 한글 창제와 해시계 등 과학발명, 농사직설을 비롯한 실용주의 서적간행 뿐만 아니라 6진으로 대표되는 국방력 강화에도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세종은 이로 인해 조선시대 지도가 가운데 ‘최고의 창조적 CEO’로 지칭되기도 한다.
세종이 이 같은 업적을 남긴 뒤 300년이 지나 조선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으로 평가되는 이산 정조의 통치철학도 세종과 궤를 같이한다.
흔히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쓸 때 조선시대 대표적 성군인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 꼽히는 것은 이들이 엄격하게 원칙과 정도에 입각한 인사를 단행한 때문이다.
궁색한 변명으로 비춰져
제주도가 최근 2010년 하반기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올 하반기 제주도의 인사는 전보 79명과 승진 41명 등 모두 13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제주도는 하반기 인사 배경으로 “특별자치도 출범 4년차를 맞아 조직의 안정화는 물론 업무의 연속성을 통한 행정의 전문성 제고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도정 현안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뒷받침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이 같은 말은 일면 수궁되는 측면도 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비춰지고 있다.
왜냐면 1년 전인 지난해 하반기 정기인사와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한 때문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하반기 정기인사를 단행하면서 승진 57명, 전보 216명, 순환근무 104명 등 모두 377명에 대한 인사를 실시했다.
당시 제주도는 “그동안 주무담당에 고참 위주로 배치하던 관행에서 탈피, 경력에 관계없이 일 잘하고 성과가 높은 공무원들을 발탁해 전진 배치함으로써 일하는 조직으로서의 변모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올 하반기 공무원 정기인사를 대폭 축소한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권자인 김태환 도지사를 상대로 주민소환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인사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만직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주도가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인사가 이처럼 소폭에 그치면서 양 행정시 인사 역시 제주도의 닮은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충실한 직원은 승진에서 누락되고 소위 힘 있고 끗발 있는 부서 직원들이 승진을 독차지함으로써 승진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직원들을 쓴웃음 짓게 만들고 있다”
“이번 정기인사는 승진자 전보를 통한 원격지와 도서지역 근무자들의 순환근무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는 등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직원들 쓴웃음 지어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제주시지부와 서귀포시지부가 이번 인사 직후 성명을 통해 하반기 정기 공무원인사의 문제점을 꼬집은 대목의 일부다.
대상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인사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
그러나 인사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묵묵히 일하는 부서 직원들이 번번이 승진대상에서 누락되고 조직의 활성화와 특별자치도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한껏 극찬했던 도와 행정시간 교류인사도 자치를 감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하반기 정기인사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흐르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제주도는 이 같은 비판을 ‘관행적인 전공노의 생트집’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옛 말에 거대한 둑은 큰 구멍이 아니라 바늘 끝 같은 작은 틈으로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입맛대로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인사는 분명 원칙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어렵고 험한 상황 일수록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풀어나가는 도정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