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라는 이름의 ‘복마전’
제주는 개발정책 실험용인가
개발의 긍극적 지향점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 편리와 편안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인문환경이든 자연환경이든 충격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가급적 환경을 덜 다치게 해야 한다.
또 있다.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개발의 열매를 나눠줘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발의 처음과 끝이 지역주민과 연동(連動)돼야 한다. 그래서 주민 동의와 합의는 기본적 바탕이다.
이것이 개발정책이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지 않은 개발은 아무리 현란한 빛깔로 색칠을 하고 그럴 듯이 포장을 한다해도 수탈의 수단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목적만을 위해 거쳐야 할 민주적 수단을 짓밟아 버리는 협잡(挾雜)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발전 전략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제주에서의 개발정책은 어떤가.
전제되는 필요충분 조건은 충족되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왕왕 정책적 실험대상으로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유린하고 농락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바로는 그렇다.
환상만 심어줬던 개발정책
지난 1964년이래 제주도는 정부 개발정책의 실험장이나 다름없었다.
도민의사와 관계없이 여섯 차례의 종합개발계획과 네 번의 자유도시 계획안이 명멸됐었다. 제주개발특별법 까지 제정겱쳬?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처럼 명멸했던 개발정책을 제주도와 도민에게 무엇을 가져다 줬는가.
달콤하게 도민정서를 자극하여 장밋빛 환상만 꿈꾸게 했고 도민적 박탈감만 심어줬을 뿐이다.
모든 개발정책 지표들이 갈수록 신뢰를 잃고 도민의 정서적 고통지수만 높여왔다면 그것은 이미 도민을 위한 개발정책일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는 13세기이래 한 맺힌 질곡의 역사로 신음해 왔다.
삼별초와 몽고의 백년지배, 중앙권력의 가렴주구(苛斂誅求), 일제36년의 숨막히는 압제, 해방공간에서의 ‘4? 피울음’ 등, 한마디로 수탈과 수난과 고통의 역사였다.
도민들이 정부의 개발정책에 시큰둥하거나 몸사리는 이유도 이 같은 수탈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도민들이 느끼는 수탈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이라면 이건 분명 또 하나의 비극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도 여기서 벗어날수가 없다.
개발센터는 제주도에 귀속돼야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사실상 도민 의사와는 무관하게 극비로 추진됐던 사업이다.
제주도를 위한다면서,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 면서도 철저하게 도민적 동의와 합의 절차를 팽개치고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도민과 후손 대대의 생존권과 직결되고 제주도의 정체성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랬다.
이렇게 탄생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지금은 제대로 되는 일없이 제자리걸음만 치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국제자유도시를 견인할 개발센터는 어떤가.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건설보다는 제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내국인 출입 제주공항과 제주항 면세점 운영으로 연간 300억원 가까운 순수익을 내면서도 국제자유도시 시행령에 규정된 ‘제주도지역농어촌 진흥기금’ 출연은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유원지로 지정 받아 수익사업을 하기 위해 토지 강제수용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센터가 편법으로 주민들의 토지를 강탈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개발센터는 면세점 운영 등과 관련한 뇌물수수 사건과 방만한 운영 등으로 최근 국회 국정감사의 도마에까지 올랐었다.
그래서 “개발센터는 복마전(伏魔殿)”이라는 부끄러운 별명까지 듣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는 건교부가 쥐고 흔들 것이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제주도에 귀속돼야 하고 면세점 운영권도 제주도에 이관돼야 한다는 도민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발센터가 도민 수탈 조직이 아니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