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슬로건
노무현 대통령 서거이후 시민들의 서울광장 출입을 막기 위해 전경 버스 수십대가 동원됐다.
이즈음 전경버스에는 ‘더욱 따뜻한 가슴으로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당시 장례식 때나 6.10 항쟁 22주년 기념식 때 경찰과 일부 시위대는 어김없이 충돌했다.
언론에서는 별 충돌없이 행사가 끝났다고 했지만 전경 방패에 목을 가격당하고 아스팔트에 나 뒹구르는 모습, 무차별 연행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경찰도 왜 할 말이 없으랴.
시위 규정을 지키지 않는 일부 시위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힘을 사용했을 것이다.
다만 가슴이 아픈 것은 국민의 손과 발이 국민과 싸운다는 점이다.
지난 2월 전국 민주공무원 노조는 김태환 지사를 상대로 ‘정보 비공개 결정 취소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제주도 지사의 업무추진비가운데 일부 항목의 구입처와 수령자를 비공개로 한 것과 복사를 허용할 수 있는데도 눈으로만 보게 한 것은 정보 공개법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청 1층에는 “기록관리와 정보공개는 투명한 행정의 첫 걸음”이라는 글이 걸려 있다.
사전에 따르면 슬로건이란 주의 주장을 간결하게 나타낸 짧은 어구이다. 일종의 강령이나 표어 같은 것이다.
전경버스에 쓰여진 글이나 행정기관이 민원인들을 향해 내세우는 글귀들이 슬로건이다.
제주도가 슬로건대로 정보공개를 확실히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자기가 뱉은 말을 100% 지키기란 힘든 것 아닌가.
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정보공개가 투명한 행정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은 제주도정의 여러 분야에서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1980년대로 기억한다.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된 이후 수시로 간첩들이 소탕되던 때가 있었다.
이때는 일선 파출소에서도 대학생 데모군들을 잡는데 열심이었다.
불온 서적을 갖고 있는 빨갱이 의심자라도 걸리면 큰 보고거리가 되던 시절이다.
이때 잡힌 한 학생이 민중 어쩌고 하는 책을 갖고 있었나 보다.
경찰은 “민주도 아니고 왜 북한에서나 쓰는 민중이란 말이 나오는 책을 갖고 있냐”며 빨갱이로 몰아 붙였다.
이에 그 학생은 “대한민국의 모든 파출소 입구에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구호가 걸려 있는데 민중이란 말을 쓰면 안 돼냐”고 반문했다.
그 일 이후 파출소 입구에 있던 민중의 지팡이라는 글귀는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소통을 중요시한다고 했던 것 같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소통과 섬김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슬로건으로 걸려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이후 500만의 국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 보복적인 짜 맞추기 수사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60%를 넘고 있다.
소통을 강조하는 청와대는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30% 안팎의 국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과를 요구하거나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쳐왔다는 야당이나 지식인, 종교인의 요구는 좌익 세력의 선동으로 치부됐다.
“대통령을 함부로 욕할 수 있는데 이게 어떻게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독재인가” 묻는 이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을 욕하고 누구하나 두려워 한 사람이 있었는가? 노통은 검찰에 대한 압력으로 비쳐질까봐 재임 중에 한번도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일부 지식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 국정원, 국세청까지 권력기관들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충성하다 보면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를 받고 이런 저런 죄목으로 구속되거나 입을 닫아야 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대운하의 부당성을 제기했던 공무원에 대한 징계 추진,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대해 내부 글을 올린 국세청 직원에 대한 파면, 구속됐던 미네르바가 법원에 의해 겨우 석방되는 일, 사장 취임을 반대했던 YTN 노조위원장의 구속과 조합원 해임, 전직 대통령 측근에 대한 무차별적인 계좌추적 등등.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바보 노무현은 이런 일을 할 줄 몰라서 안했을까? 아래 사람은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마련이다.
“국민을 섬긴다”거나 “투명한 행정을 펴겠다”거나, “따뜻한 가슴으로 손과 발이 되겠다”거나 이런 말들은 대개 자신의 출세를 앞세우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이때 지도자는 자신에게 좋은 말만 하며 거슬리는 사람 손 봐 주겠다며 접근하는 부하에게 확실하고 올바른 지시를 내려야 한다.
“슬로건 대로 행동하라”고…
김 종 현
기획/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