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름저녁의 단상

2009-06-03     제주타임스

 


여름날 해질 무렵은 햇살이 아침 창가를 찾아들 때와 비슷한 흐뭇함과 기쁨이   있다.

태양도 자신의 열에 지쳐 시들어가는 저녁나절, 하루의 일과와 소임을    마무리하고 가벼운 해방감과 자유가 자리바꿈하며 휴식의 입구에 들어서는     여름날의 늦은 오후는 고단한 삶의 순박한 살결이다

소싯적, 고향마을 집 폭낭(팽나무)의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진다, 시야에 녹색   물결이 일렁이며 한라산자락을 타고 오는  저녁미풍은 삶의 한 순간에서 오는 가벼운 흥분과 희열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구나.’

이제는 도시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여름날 해질녘이 되면 시골집 마당에 있었던 평상이 그립고, 상추쌈과 오이지가 있는 널찍한 평상 위의 저녁상도 그립다.

동내 있는 신산공원에 간다. 과년한 여성의 몸매처럼 싱그러운 진녹색 나무들은 과년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 사이를 바람이 가지 끝 잎 파리를 훌치고 감미롭게 목을 스치며 빠져 나간다.

요즘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와서 운동하고 산책을 하며 생활에 찌들인 삶의 한과 마음의 오염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집으로 오면서  지금쯤 많은 집에선 가족들이 귀가하여 샤워기가 뿜어내는 찬물로 열기와 땀을 식히고, 낮 동안의 바깥 일로 수런대었던 자신을 달래고 있을 태지....... 내가 소싯적 여름저녁은 도마 소리가 들리고, 다듬이 소리가 들리었다.

신산공원에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는 길 옆집에서 불고기 굽는 냄새와 생선 익는 냄새, 된장찌개 냄새가 열린 창문을 빠져 나와 한데 엉켜 코끝을 간지럽힌다. 

 같은 이웃에 사는 주부는 서너 개의 비닐봉다리를 들고 허둥대며 눈인사만 하며 크린 하우스로 간다.

 옆 정육점하는 젊은 이웃은 저녁밥을 지어놓고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며 흰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다.

무더운 날씨에 집안에서만 갇혀 있던 강아지는 말릴 틈도 없게 마냥 소리를 지르며 한참 이리 뛰고 저리 뛴 뒤에야 꼬리를 살살 흔들며 조용해진다.

 서늘함을 찾아 나온 이웃과 설핏한 웃음을 지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너무나 좋다.

이것이 건강한 자들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여름저녁 나절은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불볕  더위에 늘어져 잠들어 있던 생기가 되살아난다. 나른하게 권태에 젖은 꽃잎과 잎파리들도 바람결에 싱그럽게 피어나고,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바람이 부드럽게 닦아준다.

생활에 뿌리를 박고 산다는 것을 깊숙히 느끼게 해주며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이 순간이 축복이다.

녹음이 우거지고 갖은 풀벌레가 살아 숨쉬고 삼라만상이 왕성하게 성장을 거듭하는 여름은 생명의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리를 들을 때의 환희, 움직이고 날아다니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조화된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가 싱그럽다.

풍요로운 여름날에 발가벗은 듯 순수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기쁘게 살자고 다짐해 본다.

‘행복은 자기 의지대로가 아닌 내면의 생명에 의해 움직여야만 온다는 어느 여류 시인의 말을 되새기며, “내면에서 내 꽃을 피워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마당구석 나무는 물기가 올라서 싱싱하고, 맑고, 푸르다.

 새가 화살같이 빠르게 그림자도 없이 공중에 떠오른다. 노을빛이 집집마다 박혀 있는 작은 창 유리에 반사되어 프리즘같이 서로 다른 색깔을 내고 있다. 

집 마당 울타리에 담쟁이가 제법 큰 고목나무에 기어오르고 있다.

마당에 있는 비자나무, 감나무 석류, 동백, 종려나무까지 햇볕을 쬐러 나들이한다. 사이사이에 정원 석은 운치를 더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마당에 놓여진 빨간 코카콜라 홍보용  의지에 기대 앉아 하늘을 본다.

내게 생명을 낳아준 부모를 속 깊이 그리워하고
생명을 길러준 스승께 감사하며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는 배우자를 살펴보고
생명을 도와주고  건강을 잘 지켜주는 가족에게 고마워하며
생명을 나누어 가진 벗을 생각하며 감사한다.
저만치 몇 마리의 이름 모른 새가 작년에 따지 아니한 낑깡(금귤)을  먹으려고 낑깡나무에 와서 짹짹거린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