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굴 위한 제도개선인가

2009-05-03     정흥남


우리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가랑비는 말 그대로 아주 미세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내리는 듯 마는 듯 하는 비.

그래서 가랑비를 맞고 있어도 비 맞는 줄을 못 느낀다.

속담은 그러나 그 같은 가랑비도 계속 맞고 있으면 결국은 옷이 젖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속담은 작은 것이라고 자주 무시하다가는 나중에 큰 코를 다칠 수 있다는 의미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개월 후면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3년째를 맞게 된다.

2006년 7월 1일 종전 4개 시․군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제주도 중심으로 행정체계를 개편한 제주특별자치도는 출범 후 3년간 말 그대로 많은 공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주도는 이를 토대로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특별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 받는 이른바 특별자치도 4단계 제도개선을 본격화하고 있다.

1700개 권한 모두 어디로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종전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권한 가운데 1700개 이상을 이양 받았다.

그동안 진행된 3차례의 제도개선을 통해 타지방과 차별화된 각종 권한을 넘겨받아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제주도는 구체적으로 특별자치도 제도개선을 통해 외부자본 유치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를 자체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 적지 않은 대외자본을 유치를 통해 지역개발이 이뤄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긍정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별자치도 3년을 마냥 좋게만 바라보기에는 개운치 않은 구석들이 많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탄생한 자치경찰은 여전히 제 기능을 정립하지 못한 채 최근에는 아예 주정차단속 경찰로 고착화되는 인상까지 낳고 있다.

제주도감사위원회 또한 조직의 장이 도지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아 치울 수 있는 임기조차 정해지지 않은 신분으로, 독립성 시비에서 비켜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세계화와 다원화 시대를 맞아 자율과 다양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도 행정은 자치권이 없으면서도 종전의 기초 자치단체 행세를 하는 전무후무한 형태의 행정시를 비롯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주도를 중심으로 획일성과 무한복종이 중심인 경직된 조직으로 고착화되면서 곳곳에서 복지부동이 다반사를 이루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도민들이 특별자치도 출범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의 삶의 질은 나아진 게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민의 잃으면 백약이 무효

제주도의회는 특별자치도 출범 후 발생하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논의할 중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구를 설립하는 ‘제주도연구위원회 조례’를 재의결 한 뒤 지난 3월초 이를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

제주도는 당장 도의회의 이 같은 행태가 도지사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도의회는 이번에는 특별법 제도개선안에 대해 도의회 동의를 받은 뒤 정부에 제출토록 하는 조례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다.

제주도는 매우 못마땅하다는 입장을 속에 감춘 채 역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제주도는 도민들 간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는 안건들을 대거 4단계 제도개선에 포함시켜 이해 당사자들 간 갈등의 골을 패이게 하고 있다.

제주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제주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자치도 출범 후 말 그대로 ‘제도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3년.

잘된 것은 잘된 대로 발전시키고 미흡한 것은 되짚어 새롭게 고쳐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를 제주도가 애써 외면하는 인상이 짙다.

도민들의 삶의 질과 거리가 먼, 행정권한만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개선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상당수 도민들에겐 ‘제도개선 노이로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도의회가 제주도의 일방적 행정행태에 제동을 거는 잇단 정책들을 발의하면서 양측 간 갈등 역시 깊어만 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제주도의 입장이 워낙 완고해 도의회 입장이 먹혀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제주도의 일방적 행정행태를 꼬집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제주도의 현재 모습은 분명 가랑비를 맞으면서도 애써 이를 모른 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속이 젖는데도 말이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