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성의 소박한 행복
편견은 옳지 않은 것으로 굳게 믿었다.
“여자는 자고로 이래야 하는데” 따위의 말은 내 사전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근 만난 전문직 종사자 여자를 통해 최소한 내게도 여성에 대한 단단한 고정관념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중년 50대 전문직 종사자여성에게 여자들은 꽃을 선물해주면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녀의 대답은 시니컬하게 “나는 꽃이 싫어요, 남편이 무슨 기념일에 꽃을 선물하거나 꽃을 배달시키면 감동대신 짜증이 와요, 돈이 좋아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꽃보다는 돈이 좋다고 하는 친구가 많으며 자신은 더구나 친구보다 뒤떨어진 것 같아서 더욱 돈이 좋다는 것이다.
장미꽃 100송이면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고, 예쁜 꽃바구니 하나면 토라진 연인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알았던 내가 꽃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중년 여성들은 돈과 남편에 대한 몇 가지 결정적인 오해를 하고 있다.
첫째 남편의 수입이 적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 기준에 의한 판단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다.
친구네 집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다.
남들은 살기가 다 괜찮은데, 자신만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집은 예금도 많이 하고 숨겨놓은 재산도 상당히 많으리라고 아예 단정해 버린다.
이게 꽃보다 돈을 선호하는 원인이다.
이건 전적으로 오해다.
오해의 핵심은 부족하면서도 소박한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활짝 핀 꽃보다는 피기 전의 망울진 봉오리를 좋아함은 만발한 꽃이 싫어서가 아니다.
피면 진다는 하늘의 법칙이 살아 있는 이상 그 활짝 핀 꽃잎엔 내일이면 시들어 버릴 애수의 그림자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이른 봄부터 그리 많은 나날의 산고과정을 거쳐 왔지만 막상 피고나면 오래 가지 않은 것이 꽃이 운명이다.
세계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피어린 길을 걸어 왔지만 막상 정상에 서면 그 순간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부족한 자리를 채우려 안간힘을 다할 때, 그리고 조금씩 채워 나갈 때 사는 보람을 느끼고 소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꽉 차버리면 우리의 활기찬 인생은 끝나는 날이다.
돈도 적당히 가져야 쓰는 재미도 있고, 버는 재미도 있다.
쉽게 벌고, 돈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행복을 모르는 그야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배부른 사자는 싸우지를 않는다.
낮잠이나 잔다.
불꽃 튀는 눈망울도, 산림이 쩡쩡거리는 포효도 없는 게으른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조금의 배고픔은 행복한 것이다.
이 배고픔 속에는 희망이 있고, 내일을 위한 꿈이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감독이 선수를 스카웃 할때도 완숙한 경지의 선수보다도 미완성의 대기에 눈독을 들인다.
기량이 완벽함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이지만 미완이 선에겐 보이지 않은 가능성이 잠재해 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나라 야구팀도 젊고 신인 선수 팀웍(Team Work)으로 세계를 감동시켰다.
달도 차면 기울 듯 선수도 완벽한 경지에 오르면 더 이상 향상 할 여지가 없는 사양길의 시작임을 의미한다.
힘들여 오른 정상 이지만 막상 오르고 보면 갈 길은 내리막뿐이다.
신은 인간을 뭐든 알맞게 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성욕도, 식욕도, 명예욕도, 물욕도 지나치면 탈이 난다.
술이 좋다고 과음하면 KO된다.
잠도 지나치면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온다.
삶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가 좋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생겨난다.
부족해야 채우려는 의욕이 생기고, 또 채웠을 때 기쁨이 생긴다.
화려한 출발도 멋있지만 부족한 살림에 한가지식 모아가며 사는 소박함은, 여성의 덕목이고 돈보다 꽃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경제도 바닥인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줄 일지만, 여성들이 꽃을 좋아하는 서정은 슬픔과 어둠을 이길 수 있는 활동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꽃을 좋아해야하는 당위성은 소박한 행복과 미래에의 기대를 갖게 하는 여성만의 아름다움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