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만추(晩秋)
제주의 가을정취는 억새의 향연(饗宴)이 우선한다. 억새의 은빛 물결이 넘실대는 이 가을을 무어라 말과 글로 표현할 것인가. 온 들녘에 가득한 억새는 제주의 만추를 알리는 전령사다. 오름에 올라 내려다보는 억새의 물결은 가히 가을정경의 압권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억새는 볏과의 다년생 풀로 높이는 1~2미터 쯤 자라고 잎은 긴 선 모양으로 7~9월에 갈색 꽃이 피며 작은 이삭은 자주 색을 띤다. 잎을 베어 지붕을 이거나 마소의 먹이로도 쓴다.
제주의 가을은 억새로 해서 축복을 만끽한다. 상큼한 바람은 대지를 머금고 바람 따라 살랑대는 너울을 닮은 억새의 군무(群舞)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이 장관을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다. 우리는 이 억새의 장관을 늘 상 지나치며 세월이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가늠할 따름이었다.
가을이면 여느 지방에서도 억새 꽃 물결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어디다 제주의 억새와 비길 것인가. 제주의 억새는 다른 지방의 억새 보다 싱그러움을 더한다. 푸르다 못해 군청색이 감도는 몸체에서 은빛 꽃을 피우고 그 꽃이 만개하기 전 쯤 해서 억새는 살며시 고개를 숙인다. 고개가 무거워 아주 숙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을 향하여 해바라기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억새가 고개를 드는 시기는 시월이 가고 찬바람이 불어오면서부터다. 제주의 세찬 칼바람을 맞은 억새의 몸짓은 사뭇 경쾌하다. 그 무게를 느끼게 했던 몸짓, 감청색으로 치장했던 억새가 노란 황금물결로 탈바꿈하기 까지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코끝에 와 닺는 하늬바람에 우리가 옷깃을 여밀 때쯤이면 제주의 산야엔 무서리가 내리고 억새의 은빛 물결은 황금색으로 변한다. 이 때야 우리는 바람 따라 서걱대는 억새소리를 들으며 속절없이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제주의 산야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억새는 제주 방언으로 ‘어욱새’ 또는 ‘어욱’이라고도 부른다. 억새가 물결을 이루는 이 들녘에는 살찐 부룩소가 활기를 치고 망아지지가 뛰놀던 목가적 풍경의 오랜 세월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억새는 새순이 돋아 날 때는 마소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자라면서는 마소의 발굽에 밟히는 시련도 겪었다. 그래서인지 그 때의 억새는 윤지지 못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나 할까. 마소가 뛰놀던 들녘에 윤지게 자라는 억새를 보며 향수에 젖어보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억새가 물결을 이룬 이 들녘은 선인들의 얼이 녹아 있는 현장이다. 가끔 이 들녘이 개발이라는 잣대로 재단되지는 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 볼 때가 있다. 혹자는 제주관광을 활성화하려면 골프장이 지금의 배는 있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억새가 물결을 이룬 이 들녘이 골프장 후보지로는 최적지라고 기염을 토하는 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아니 들음만 못한 말들이다.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라던 ‘곶자왈’도 그랬다. ‘곶자왈’ 훼손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있기는 했으나 그 목소리는 수면 밑으로 가라안고 ‘곶자왈’은 ‘캐터필러’의 굉음에 맥없이 무너졌다. 그 자리엔 보라는 듯 골프장이 들어섰다. 이것이 제주개발에 맞춰진 ‘프로그램’이었다. 축제를 열고 제주관광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억새들녘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억새 없는 제주의 만추는 황량(荒凉)하다.
수필가 조 정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