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연구위원회’…도, 소송 명분 잃어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지난해 말 어수선한 정국과 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은영자중 꼬집으면서 꼽은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이다.
이 사자성어의 뜻은 말 그대로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으니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는 의미다.
제주특별자치도 전반을 평가하게 될 합의제 행정기관인 ‘제주도연구위원회’ 설치문제를 놓고 제주도가 대놓고 제주도의회의 입장에 반대, 대법원에 제소했다.
제주도연구위위원회 설치와 운영의 근거인 연구위원회 조례가 무효인 동시에 효력을 정지해야 한다며 대법에 소송을 낸 것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동반자 관계를 벗어나 적어도 이 문제에 한해서만은 적대적 관계를 가진 채 이기기 위해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물론 법정싸움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느쪽이 이기든 지든 고스란히 도민들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제주도연구위원회 설치에 관해 제주도는 행정기구의 설치 운영은 단체장의 고유한 권한인 만큼 도의회가 이에까지 개입, 왈가불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도의회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이후 각 분야에서 파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중립적 기구를 통해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서고 있다.
제주도의회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2006년 7월 1일 ‘역사적’인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빚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에서 논의․연구하기 위한 조직인 ‘제주도 연구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제주도의회는 이에 따라 의원발의로 제주도연구위원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 제주도에 송부했다.
제주도는 그러나 이에 불복, 제주도의회에 조례의 재의를 요구했다.
새 제도 평가는 당연
제주도의회는 이에대해 본회의를 열어 의원 만장일치로 제주도의 요구를 거부한 채 조례를 확정 시켰다.
제주도의회가 도입하려는 제주도연구위원회는 올해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운영되는 한시기구다.
제주도연구위원회는 중립적인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위상강화 방안 ▲의결기관과 집행기관의 통합형과 대립형 구조에 관한 사항 ▲기초 자치단체 부활문제 ▲행정시 존폐에 관한 사항 ▲읍면동 활성화 방안 ▲주민참여 활성화 방안 등을 연구, 각각의 사안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2006년 7월 제주에 시행된 제주특별자치도는 당시 이 제도를 도입했던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실험적 정책’의 하나였다.
물론 특별자치도 출범에 앞서 당시 4개 시․군을 폐지하는 주민투표가 이뤄져 근소한 차이로 시․군 폐지를 통한 행정계층구조의 단순화를 도모했다.
이 과정에서 싫든 좋든 ‘풀뿌리 민주주의’로 상징되면서 가장 기본적인 주민참여 민주주의의 한 축인 기초자치단체의 자치권은 폐지됐다.
종전 3단계였던 행정계층을 2단계로 축소하겠다는 이른바 ‘혁신안’이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뒤 2년이 지나고 있으나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 한 ‘행정시’라는 기형의 조직은 여전히 종전 시군과 같은 행세를 하고 있다.
떳떳한 처사 아닌듯
이 과정에서 종전 각자의 자치권을 행사하면서 나타났던 다양성과 상호존중을 토대로 한 자율성은 실종되고 제주도 중심의 맹목적 단순성화 일방적 지시에 의한 획일적 복종체계가 고착화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상당수 언론이 실시한 그간의 여론조사만을 놓고 볼 때에도 도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악화됐다’는 비율에 밀리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특별자치도의 지나온 과정을 제3의 기구를 통해 냉정하게 평가,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자는 방안을 ‘권한침해’라는 지엽적 문제를 내세워 외면하고 있다.
행정조직 설치권한은 지방행정의 수장인 지방자치단체장의 고유 권한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처음 도입, 시행되고 있는 특별자치도 운영과정을 연구․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완한 뒤 발전적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도민들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처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병이 있는지 없는지, 진찰을 못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예 의사 앞에 나설 자신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의 행보가 정정당당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