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사정 재판서도 반영

벌금 대상 피고인에 검찰ㆍ법원 '집행유예'

2009-03-16     김광호
어려운 경제사정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반영되고 있다.

검찰이 약식(벌금) 기소 대상 피고인에 대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집행유예를 구형한 데 이어, 재판부도 피고인 본인의 뜻을 확인한 뒤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보기 드문 형태의 판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지법 형사1단독 이계정 판사는 지난 13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 모 피고인(45)에 대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 피고인은 지난 해 11월 11일 오전 1~2시 사이에 서귀포시 성산읍 모 주점 앞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 A씨(46)가 술에 취해 시비를 걸자 넘어뜨린 뒤 얼굴을 수 회 때려 약 8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이 피고인은 벌금 외에 전과가 없고, 피해자인 A씨와 합의한 상태였다. 이 경우 약식기소로 처벌하는 게 일반적 관행이다.

이 판사는 “수사 검사가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집행유예를 원하는 피고인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구약식이 아닌 정식 재판(구공판)을 청구한 것으로 안다”며 “공판에서도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이날 구형과 선고가 당일에 이뤄진 공판(즉일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벌금과 집행유예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벌금보다 집행유예가 무거운 형벌인데 그래도 집행유예를 원하느냐”고 확인한 뒤 피고인 뜻대로 형(징역형에 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는 만에 하나 다른 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벌금의 경우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 있다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경고했지만, 벌금형을 원치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한 법조인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난 때문에 벌금보다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원하는 피고인이 늘어날 것 같다”며 “먹고 살기 힘든 딱한 사정의 피고인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선별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피고인들도 한 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벌금이 아닌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원해 장래 형사사건 초래시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는 불이익이 없도록 좀 더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