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무원 마을 담당제’ 유감
옛 말에 아가사창(我歌査唱)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책망 들을 사람이 도리어 책망을 한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도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이 벌써부터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공무원 마을 담당제’이다
제주도의회 등 일부에서는 이 제도가 다분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지역 동향을 파악하고 이 과정에서 도정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접하는 제주도의 입장은 정 딴판이다.
이 제도가 제주도 행정시․읍면동 지원․조정 등에 관한 규정․훈령(제91호)에 따른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제주도는 아예 이 제도 운영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부각시키면서 문제를 야기한 그 자체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늘 감시당하는 느낌”
제주도의 읍면동 지역할당제는 제주도본청 간부공무원들을 43개 전체 읍면동별로 지역 담당제를 정해 말 그대로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제도다.
해당 간부공무원들은 월 1회 이상 책임 지역을 방문,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수렴한 뒤 이를 해소하도록 하고 있다.
제주도는 이와 병행 해 양대 행정시를 통해 6급 이상 직원들을 마을별로 할당, 지역책임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직원들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마을에서 예상치 못한 민원이 발생했을 경우 떠않게 될 ‘관리부실’ 책임을 면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해당 지역 마을이장 등을 통해 동향파악에 나서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읍면동 역시 각 마을별로 책임공무원을 두고 해당지역을 살피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 마을에 대해 이중 삼중의 담당공무원이 지정, 운영되면서 온갖 잡음들이 일고 있다.
일부 마을이장들은 ‘늘 감시당하는 느낌’이라며 공공연하게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지난해 제주도는 영리병원 홍보를 위한 ‘관제 반상회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마을 책임제를 공공연하게 가동했다.
대규모 공무원 동원을 통한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은 영리병원을 거부했다.
제주도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공무원 동원에서는 성공했지만, ‘아니오’라고 양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민심동원에는 실패한 것이다.
제주도 간부공무원들의 읍면동 책임제의 경우 ‘훈령’이라는 규정이 있다고 하지만 행정시 담당급 공무원들의 마을 책임제는 그 근거규정 조차 애매한 제도다.
제주도는 이에 대해 ‘관례적으로 해온 시책’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내년 지방 선거용” 논란
“행정 잡무가 많아 공무원들이 밤 늦게까지 근무하고 주말에도 시간을 내 근무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지역조직사업에 열심이냐”
“휴식도 업무의 연장인데 재충전 기회를 주지도 않고 각 실국별로 고유 업무외에 지역 담당제까지 운영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고, 누가 보더라도 선거용이다”
이는 며칠 전 제주도의회가 제주도 자치행정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업무보고 현장에서 한 의원이 질의한 내용이다.
공무원은 원론적인 표현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말 그대로 주인인 국민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무인 것이다.
그런 공무원들이 본연의 업무와 달리 보여 질 수 있는 일에 대거 동원되고 그 같은 행태가 반복돼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다면 이는 국가나 사회 전체를 위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헌법은 제 7조에서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공무원의 국민에 대한 무한 봉사를 강조한 뒤 이어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도입된 뒤 제주사회는 늘 공무원 선거개입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실제 극소수 ‘정치공무원’들의 공직을 망각한 행태는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이 같은 선상에서 ‘줄서기’라는 말이 항상 공직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직의 기본인데도 막상 선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처매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의심 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공무원 마을 담당제’를 내년 지방선거와 연관 지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데도, 제주도가 ‘규정과 관례’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아가사창’의 사자성어를 떠오르게 한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