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교, ‘뽑기’ 아닌 ‘가르치기’ 경쟁해야

2009-02-16     한경훈 기자

 

양성언 제주도교육감은 최근 민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 가장 아쉬웠던 점을 말해달라는 기자 질문에 “고입 선발과 관련해 일부 잡음이 생겼던 일”이라고 말했다.

대기고등학교가 우수 신입생 유치를 위해 일부 중학교 졸업생에게 선발시험 점수를 낮추도록 종용한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교육자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도록 직·간접으로 권유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교육계 안팎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양 교육감으로서도 고교 신입생 배정방법을 놓고 깊은 고민 끝에 채택한 제도의 첫 시행에서 이 같은 불미스런 일이 생겨 충격이 컸으리라 본다.

제도 악용해 학생선발 바람직않아

이번 대기고 사태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과잉 욕심에서 비롯됐다.

물론 고교들이 우수한 신입생을 확보하기 노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교사들의 교직생활 중 가장 큰 보람은 인재를 길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맹자도 우수한 인재를 얻어 교육하는 일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중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학생 선발에 편법을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수낮추기’를 권유하는 것은 철저히 비교육적이다.

 그것이 아무리 학생 장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해도 교육자가 그래선 안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는 법이다.

이번 대기고 행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정성을 들여 교육시키고 명문대에 많이 합격시키면 학교 위상이 강화된다”는 ‘이기주의’ 발상이 엿보인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 뽑기 경쟁이 아니라 가르치는 경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학생들을 차별 않는 교육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 고교는 일부 성적 우수 학생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시각이다.

도내 평준화지역 고교는 공·사립을 불문하고 명문대 대비반인 ‘SKY(서울대·고대·연대)반’을 별도로 편성해 집중적인 입시교육을 하고 있다.

일부 사립고는 전체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할 예산으로 성적 우수 신입생에게 해외여행의 특전을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성적 중·하위권 학생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훨씬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학생들도 교사가 동기를 부여하고 제대로 지도하면 얼마든지 상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고교는 학생들의 중학교 졸업 당시의 ‘성적 등급’에 연연할 게 아니라 이들의 입학 후 ‘성적 등급’을 여하히 끌어올릴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평준화제도가 유지되는 한 성적 우수 학생을 받아 손쉽게 학교 명예를 드높이려는 발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등급별정원제’ 보완책 마련돼야

제주시 평준화지역 고교 신입생 배정과 관련해 도교육청이 올해 처음 도입한 ‘등급별 정원제’는 평준화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에게 제한적이나마 학교 선택권을 줬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수 학생의 ‘쏠림현상’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 그 허점이 드러나 제도의 공신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 등급 조정의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통해 제도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부당한 방법으로 신입생을 유치하는 고교에 대해서는 강력한 행·재정적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  경  훈
교육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