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남용은 禍를 부른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37군데의 골프장이 들어선다. 시 읍면에 3군데 꼴이다. '국제자유도시'한답시고, 늘어나는 건 골프장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개발의 명목으로 여기저기서 우리의 자연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 심지어 '곶자왈'까지.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지금은 아무 일도 없지만, 그것이 앞으로 어떤 환경재해를 불러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지난번 동부지역의 집중호우에 의한 피해도 '무모한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환경영향 평가를 하고 있다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다. 만일 여기에서 자연의 한계와 그 영향을 밝힐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식의 오만이다. 일부 전문가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자연은 우리의 생명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자연의 미래 없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자연을 무의미한 물질로 축소시키고, 자연의 실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의미들을 무시할 때, 우리들의 삶은 그만큼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누가 자연을 조각 내는가
자연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자연에서 영혼을 분리하고, 급기야 인간의 정체성을 단편화시킨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단편적인 세계관은 단편적인 사고(思考)를 만들어 낸다. 사물을 보는 세계관에 따라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자연을 한낱 물질로 축소하는 세계관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 우리고장을 조각조각 파편 덩어리로 날려버리기 위한 '음모'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우리 자신의 이미지대로 우리고장의 자연을 조각 내고 있는지 모른다.
자연은 비유기체적 세계와 더불어 끊임없이 분화하고 복잡해지는 생명체들의 진화의 누적물이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응집성의 관점에서 보면, 고도로 질서 잡힌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따라서 무모한 개발논리와 어설픈 보호논리로 이러한 질서를 교란하는 것은 유기체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천은 이론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청지기적 소명 의식에 따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이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고장의 오늘이 있게 한 자연적 진화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종(種)들의 사회적 역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무기물질로부터 유기체가 발생했듯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윤리의식이 나온다. 윤리적 의지만이 물질적인 필요의 충족을 넘어서는 생태적 감수성을 산출할 수 있다.
자연 남용의 메카니즘이…
자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환경재해는 그 실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동부지역의 집중호우에 의한 피해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자연으로 표현되는 생태계는 스트레스가 쌓여 그것이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날 때 폭발한다.
그러나 더러는 그 실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예 미래를 철저히 낙관한다. 그러나 당장이 나쁘지 않다고 하여 반드시 미래도 그러리라는 생각은, 자연에 관한 한, 지나친 착각이다. 현재의 표면적인 발전 속에 감춰진 자연 남용의 메카니즘을 분명히 따지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자연을 산업화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까지 산업화한다. 자연이 주는 심오한 이치와 풍요함을 모른 채, 그저 유행따라 생태주의 지적 사고를 운위하거나, 자연을 칭송하는 것은 부질없다. 자연이 바로 역사적 동인으로 상호협력적인 생태적 관계를 통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 무모한 개발이 만들어 내는 자연파괴에서 자연을 구할 수 있다.
자연은 말없이 존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지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자연계의 틀 안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들의 오만의 표현일 뿐이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묻는다. 우리는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어떠한 자연을 물러주기를 바라는가. 정녕 우리는 어떠한 인간이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