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이런 시절도 있었다

2009-01-06     제주타임스

  며칠 전 오래된 필자의 메모장을 문득 넘기다가 유엔의 조사한 한 통계를 발견했다.

  그 메모에는 ‘60년대 초 대한민국이 120여개 국가중 119위로 못사는 나라’였다는 내용이다.

유엔의 조사한 이 내용을 접하면서 그 혹독한 보리 이삭을 줍던 가난한 시련을 겪은 기억이 떠올랐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속에 세끼를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200여개가 넘는 국가 중 13위의 경제를 비교하면 세계가 대한민국의 저력에 놀랄 만도 하리라 여긴다.

  지금우리는 이렇듯 물질적 풍요 속에 삶을 누리고 있다. 이런 세대에 살고 있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 그 시절의 좌절과 곤경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비교할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음을 모르는 세대들은 침통하리라 여긴다.

  당시의 생존은 어떻게 하면 하루 두 끼 죽이 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하는 삶 그 자체였다.

  옷은 대를 이어 천 조각이 귀할 때라 손바느질로 구멍이 나면 꿰매기를 몇 차례나 반복해서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고, 그래서 위생이란 품격 있는 낱말은 사치였다.

  신발은 검정 타이야 고무신에 구멍이 나면 천을 대고 꿰맨 신발에 맨발이 다반사였다. 생각하기 조차 비참한 눈물겨운 그 시절이었다.

  불과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그런 시절이 언제 있었느냐며 먹고 살만 하면서 삭막해져 가는 인심에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도덕적 윤리적 의식보다 학력, 출신대학, 직업보다 직장을 더 중요시 여겼던 시절이라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세대들이 대리만족의 일면도 없잖아 있곤 하다.

  이럴 때일수록 높은 풍랑에 선장이 뱃머리를 잘못 돌리면 침몰하고 만다. 그 위험한 파도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속력을 줄이고 위험을 넘기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메아리에 추락과 좌절 파국을 연상하는 낱말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하기위한 자극적인 메시지로 받아 드려야 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서야 할 국회가 요즘은 어찌된 모양인지 국민을 위한 희망의 정치를 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만 하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개들 집단도 서로 싸우다가 적이 나타나면 서로 힘을 뭉치는데 만물지 영장 중 으뜸인 국민의 대변자들이 국내외적 상황을 안다면 이래서는 안된다.

  누구의 잘못이건 국민을 위한다면 국회에서는 물리적인 방법보다는 모든 과정을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혜가 아쉽기만 하다.

강  영  수
우도면 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