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대법원의 무원칙 어디까지

2008-12-07     제주타임스

  말 뿐인 ‘선거사건 신속 재판’

필자는 지난 해 9월 본란에서 ‘대법원은 말이 없다’는 제목으로 공무원 선거개입 혐의 사건 상고심 판결이 이유없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 등 9명의 피고인과 검찰은 4월 12일 광주고법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였다.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1, 2, 3심 판결을 각 2개월씩 6개월 내 종결토록 하고 있다.

 ‘선거 범죄사건의 신속 처리 등에 관한 예규’에서 이를 명시해 놓고 있다.

1, 2심도 검찰의 공소 제기 후 6개월이 소요됐으므로 예규의 규정은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예규대로라면 상고심 선고는 지난 해 7월 12월을 전후해 이뤄졌어야 했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보다 무려 6개월이 지나서야 원심(2심) 유죄 판결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광주고법이 대법원의 ‘형상불변론’의 판례 변경 취지에 따라 무죄 선고를 내렸음은 다 아는대로다.

올해 1월1일부터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위법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시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을 늦춘 것도 그 첫 적용 사례 결정 여부에 대한 부담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대 변화 외면하는 오만

대법원의 무원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전원합의체의 파기 판결 환송에 따라 광주고법은 지난 1월 15일 피고인 9명 중 유죄가 인정돼 상고 기각된 2명을 제외한 7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긴 잠에 빠졌다.

광주고법 파기 환송심이 대법원의 뜻(?)대로 무죄 선고를 내린지 만 1년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감감소식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6년 4월27일 제주지검이 제주도선관위의 수사 의뢰에 의해 제주도청 정책특보실을 압수수색해 김 지사 TV토론 관련 자료와 업무일지를 압수하면서 비롯됐다.

검찰은 같은 해 10월19일 관련자 9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3개월여 만인 1월26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이, 2개월여 후인 4월 12일 항소심인 광주고법에서도 유죄 판결됐다.

대법원은 이로부터 7개월 만인 11월15일 판기환송 판결을, 다시 2개월 후인 올해 1월 15일 광주고법 파기환송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절차를 굳이 나열하는 것은 대법원의 오만이 극치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소 하급심인 1, 2심에는 예규대로 재판을 종결토록 하면서 자신은 ‘프로크테스크의 침대’처럼 마음대로 짜맞추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이 사건 1심 법원이 재판 기일을 3개월여 소요하자 재판진행 속도가 더디다며 질책하기까지 했었다.

‘확정 판결’ 더 미루지 말라

그랬던 대법원이 정작 스스로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요즘 이 사건을 지켜보는 많은 도민은 물론 검사와 판사들까지도 대법원의 원칙없는 재판진행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파기 환송에 따라 선고한 판결의 확정 판결을 1년이 다 돼 가도록 질질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파기 환송에 따라 고법이 무죄 선고했으므로, 대법원은 이를 수용해 획정하면 된다.

따라서 요식행위 재판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파기 환송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막상 파기 환송은 시켰지만, 판결 내용이 대법원의 생각을 충족시키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아울러 고법의 판결 내용에 대해 문제 또는 부분적인 하자가 있는 부분을 놓고 장고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유였든,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확정 판결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3년째로 접어들게 된다.

아마도, 대법원 스스로 원칙을 어긴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확정 판결이 지연되면서 가장 불편을 느끼고 있는 쪽은 역시 피고인들이다.

무엇보다 장기간 수사와 재판으로 인한 심적 부담 해소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결론을 끌어선 안 된다,

대법원은 국민위에 군림해서도 안 되고, 하급심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항상 국민과 하급법원의 뜻을 헤아리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철옹성이 아닌 항상 열린 자세가 돼야 하고, 먼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져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