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지난 일요일 야간·휴일민원처리센터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30대 중반의 여자와 어머니가 중후한 모습으로 야간·휴일민원처리센터에 들어와 아무말 없이 자리에 앉고 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굽니다. 평소였으면 무슨일로 찾아 오셨는지 당연히 물어볼 것이었으나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와 앉을때부터 무엇인가 말하기 힘든 일 때문에 오셨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말을 먼저 꺼낼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사귀던 남자의 집착으로 견디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와 가혹한 폭행, 협박 등을 견디다 못해 찾아온 그녀는 남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기보다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을 말하면서 그간 자신이 겪어온 험난한 일들을 다른 사람이 아닌 경찰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간 수사과 경제범죄수사팀에서 각종 고소·고발사건 등을 처리하는 조사형사로 일하면서 고소인, 피고소인, 참고인들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진위여부를 판단해내야만 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마음에 공감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온 저이지만, 이제는 상대가 하는 말의 진솔함보다도 상대가 하는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저를 보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사건해결과 관계없이 상대가 저에게 툭 터놓고 하는 말도 습관적으로 필요한 부분만을 들으려고 하거나 “진짜? 혹시 거짓? 과장된 말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듭니다.
그런 의심이 들 때 마다 저는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고 가끔은 상대의 말을 듣는것 조차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그녀와 어머니는 경찰관인 저에게 그간의 힘든 생활에 대해 1시간 반 넘게 눈물을 쏟으며 터놓고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들의 절실한 마음은 일상에서 제가 가진 나쁜 습관을 잠시 버리게 하고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여러 차례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마음을 보일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배려와 미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겸손한 사람을 환영합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가 많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이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만나는 고소인, 피고소인들 중 일부는 많은 말을 하기를 원하면서 자신의 말만이 오로지 진실함을 조사형사에게 심어주고자 노력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에 대한 오류를 범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 진술의 모순점을 들추어 추궁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으로 말 많은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 한 말로 족쇄를 차지 않고 ‘말’이라는 감옥에 갇혀 혼자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환영받을 수 있도록 내가 말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나, 그런 경찰관이 되고자 합니다.
너무 외로워서 간절히 말하고 싶지만 말할 상대가 없는 이들을 찾아가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상대가 하는 말에 마음을 다하여 귀 기울여 보세요! 그리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눠보세요. 그게 곧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매력이 아닐까요.
홍 근 혜
서부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