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조건 항소’, 원인 분석 필요하다

1심 판결 2~3건 중 1건 꼴…법원 책임도 있다

2008-11-23     제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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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제주재판부 재판장인 이상훈 제주지방법원장이 지난 21일 형사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 도중에 아주 이례적인 말을 했다.

그는 “제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은 무조건 항소한다”며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올 들어 10월말까지 광주고법 제주부에 접수된  항소사건은 100건이나 된다. 지난 해 같은 기간 80건보다 20건(25%)이나 늘었다.

그러나 문제는 1년 전에 비해 접수 건수가 20건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올해 1심 재판부인 제주지법 형사합의부 선고 사건 185건 중 절반 이상이 광주고법 제주재판부에에 항소됐다는 사실이다.

모든 항소 사건이 ‘무조건 항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1심 판결 중 50% 이상이 항소되고 있는 것은 이 법원장의 말대로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무모한 항소는 판결 결과만으로도 알 수 있다. 거의가 항소 기각돼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법원장이 재판 도중에 느닷없이 묻지말라식 항소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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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법원장의 이러한 언급이 사전 계획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재판 중 우연한 발언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항소하는 피고인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장으로서의 당연한 지적이라는 점이다.

다만, 보도 자료 또는 기자 간담회 등의 방법이 아닌, 법정에서 특정 사건의 선고와 연계해 ‘무조건 항소’ 제재 대책에 대해 언급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항소사건의 급증은 제주지법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10월까지 형사단독 판결 사건 1788건 중에 655건이 항소돼 지법 제1형사부에서 처리됐다.

더욱이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에 처리된 362건보다 293건(81%)이나 늘어난 처리 건수다.

가히 폭발적 증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1심 형사합의부 판결 2건 중 1건이, 1심 형사단독 판결 3건 중 1건 꼴로 항소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고법 제주재판부는 형사사건뿐 아니라, 민사사건과 행정사건 및 가사사건도 재판하고 있다.

 1개 재판부(재판장 1명.판사 2명)가 올 들어 10월말까지 형사사건 89건과 민사사건 110건, 행정사건 29건 등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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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하는 피고인들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검사의 항소 증가도 상승작용을 하고 있긴 하다.

간혹 유.무죄 다툼 또는 법리 오인 등을 이유로 한 항소도 있지만, 대부분 양형 부당이 항소 이유가 되고 있다.

특히 1심에서 최하한의 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양형이 부당하다며 무조건 항소하는 게 문제다. 이 법원장이 지적한 ‘무조건 항소’ 역시 이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피고인들이 상소를 당연시 하게 된 데에는 법원의 책임도 있다. 판결시 더 이상 감형을 할 수 없는 양형이라는 점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고 있다.

변호인들도 사건을 수임하기 전에 피고인들에게 이런 점을 사실대로 말해 무모한 항소를 하지 않도록 할 도덕적 의무를 지녀야 한다.

1심 판결이 2심에서 번복되지 않도록 사실 심리에 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법관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항소심의 1심 파기율이 높아질 수록 ‘무조건 항소’는 늘게 돼 있다.

이 법원장이 언급한 무조건 항소에 대한 대책, 즉 ‘피고인의 항소가 무익한 것으로 밝혀지면 본형에 산입하는 선고 전 (미결) 구금일수를 전부 또는 10~20일까지 산입해 주지 않는 것도 물론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 시행과 함께 법원의 재판 소홀로 인해 ‘무조건 항소’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원인 분석도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