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골 깊은 산 혼자만 오르려는 도정

2008-11-16     정흥남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자연과 동화되면 산이 다 받아준다. 부정적인 생각은 등산을 힘들게 한다”

1985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 등반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산사나이 엄홍길씨는 산에 오르는 마음을 이같이 소개했다.

산에 오르는 일은 예로부터 좁게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넓게는 세상사를 담았다고 한다.

제주도가 내년에 진행되는 제주특별자치도 4단계 제도개선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06년 7월 ‘역사적’인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해마다 ‘제도개선’이라는 틀을 만들어 ‘장래의 목표’들을 찾아 이를 입법화 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잇따르는 문제제기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년이 지나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제주특별자치도의 위상 강화방안과 시․군 부활문제, 자치경찰 및 특별행정기관 운영개선 방안 등 제주도의 주요 현안을 ‘제주도의 입장’이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기 위한 제3의 기관을 만들자”

지난 3일 제주도의회 임시회 때 제주도의원들이 의원입법조례로 발의한 가칭 ‘제주도 연구위원회’설치 조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도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제기한 발언이다.

“제주도는 정부가 도민들의 기대만큼 권한이양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제주도는 현재 가장 많은 자치권을 부여받는 등 제도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때문에 기존에 이양 받은 권한 및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성과를 내는데 노력해야 한다”

지난달 17일 제주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최인기 의원이 제주특별자치도를 평가하면서 지적한 발언의 한 대목이다.

고도의 자치권을 확보, 국제수준의 행정규제가 적용되는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추진된 제주특별자치도는 홍콩, 싱가포르 등과 경쟁하는 국제자유도시를 꿈꾸며 닻을 올렸다.

▲특별자치도 한계

제주특별자치도는 출범 후 1700여개의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시․군을 ‘행정계층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폐지했다.

최근 제주도감사위원회 독립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 문제의 근원에는 현 도감사위원회체제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주도정을 제대로 감시, 비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문제의 내면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도지사가 감사위원장 추천 및 임명권은 물론 사무국 모든 직원들에 대한 승진․전보 등의 인사권까지 갖고 있는 제도 아래서, 제도개선 없이 감사위원회 독립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자치경찰의 문제만 해도 간단치 않다.

출범 때 출범이후의 구체적인 운영방향과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 부담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자치경찰은 말 그대로 제주특별자치도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국제적 관광지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경찰․환경경찰’을 지향했던 이상은 오간데 없고 주정차 위반 단속업무가 주가 된 느낌이다.

이 뿐만 아니다.

특별자치도 출범 때 순진하게 수용했던 국도폐지는 앞으로 국도사업에 대한 국고지원 중단으로 이어져 제주가 전국적인 ‘국도 왕따’로 전락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대동’의 장으로 나가야

특별자치도 출범 2년을 넘기면서 드러나는 제반문제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으나 이를 공론화 할 장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도특별차치추진단이라는 내부 조직과 제주발전연구원 등 ‘제도권 조직’을 통한 ‘제도개선’을 고수하며 외부의 개입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권 조직’이 도정책임자의 의지와 생각과 다른 제도개선안까지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해 저문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의회는 물론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현 제주도정에 불신과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장래 목표인 이른바 ‘4단계 제도개선’은 제주도정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도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보장하고 이 과정에서 제주특별자치도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한 뒤 드러난 문제들은 공론화의 장을 통해 거슬러 바로잡는 것이 역사의 올바른 흐름이다.

오르는 것은 물론 내려오는 것조차 보기 어려운 골 깊은 산에 도민들은 따라 오든 말든, 도민들을 위한다며 혼자만 오르겠다고 나선다면 도민들은 과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의 믿음으로 도민들과 함께 산에 오르려는 넓고 열린 도정을 기대해 본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