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숙형공립고’로 ‘개천의 용’ 만들자

2008-11-10     한경훈

‘개천에서 용 난다’.

신분이나 여건 등 극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출세해 이름을 떨치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개발시대 이후 이 말은 교육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지 않아나 싶다.

입시철이면 변변치 못한 집안의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언론보도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개천의 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지난 시절 가진 것 없는 집의 아이들이 가난을 벗고 사회적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로는 교육이었다.

이런 사정이 ‘처지는 어렵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자식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한국 부모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을 낳았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발전 등 국가위상 제고의 원천이 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런 ‘개천의 용’이 실종됐다시피 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물적 토대가 없이는 교육을 통해 ‘꿈’을 이루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면서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푸념마저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도내에서도 서민층 자녀들의 제주시 평준화지역 고교 입학률은 낮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학벌이 무시할 수 없는 ‘두터운 벽’으로 작용하는 우리 사회현실을 감안하면 교육을 통한 저소득층의 계층이동 가능성은 엷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의 학생들이 교육에서 희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쟁대열에서 일찌감치 뒤처진 농어촌 고교 재학생들은 꿈을 잃은 채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는 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다.

 꿈을 잃은 아이들이 많은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농어촌 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기숙형 공립고’ 추진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제주도교육청은 정부의 ‘고교다양화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해 도내 읍면지역에 소재한 표선·성산·애월고 등 3개교를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운영하기로 했다.

기숙형 공립고는 기숙사 시설을 통한 각종 교육지원으로 도·농 간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이들 학교에는 53억원을 투입, 수용인원 70명 안팎의 기숙사를 짓고 2010년 3월부터 가동하게 된다.

기숙형 공립고에 대해 일부에서는 다른 고교와의 형평성, ‘입시형 교육’ 등을 들어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나 도시에 비해 열악한 농어촌 교육여건 개선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나 기숙사만 갖췄다고 자동적으로 교육여건이 좋아지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숙형 공립고가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학생들 지도에 대한 교사의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수익자부담을 원칙으로 하되 사감 인건비 등 기숙형 공립고 운영에 필요한 일정 경비를 자자체와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입시 등에 성공 사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개천의 용’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 ‘농어촌 학교도 도시 학교 못지 않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기숙형 공립고가 농어촌 인구유출 차단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  경  훈
교육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