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재판받으러 광주까지 가야 합니까"

2008-11-02     김광호

지난 9월 제주 출신 첫 대법관이 탄생했다.

대법원은 서울대 법대 양창수 교수(55)를 대법관에 임명 제청했고,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관이 됐다.

법관과 검사, 변호사가 독식해 온 대법관에 법학 교수가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역시 이렇게 파격적이고 참신한 인사가 가능했던 것은 개혁성향의 이용훈 대법원장 때문이다.

만약, 그가 양 대법관을 최종 낙점하지 않았다면 제주 첫 대법관이자, 학계 출신 첫 대법관은 탄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민들은 제주 출신 첫 대법관의 임명을 반기면서도 제주지법에 설치된 기존 ‘광주고법 제주부’를 ‘광주고법 제주 원외재판부’로 격하시킨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원외재판부로의 변경은 이미 지난 2월 이뤄졌다.

대법원이 무슨 까닭인지 이 사실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잘 몰랐을 뿐이지, 제주지법 합의부 판결 중 항소심 재판은 2월부터 원외재판부가 담당해 오고 있다.

솔직히 지난 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집중 제기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원외재판부가 무엇인지 모르는 도민이 태반일 것이다.

더구나 원외재판부로 명칭만 바뀐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무감각이 더 문제다.

 대법원이 1995년 3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지법에만 광주고법 제주부를 설치한 것은 항소심 재판을 받기위해 비행기 타고, 배 타고 광주까지 가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후 극소수 특별한 사건을 뺀 모든 항소사건이 제주부에서 처리됐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민사사건 14건, 형사사건 5건, 행정사건 6건 등 모두 25건의 항소사건이 광주고법으로 재배당됐다.

제주부 체제였다면, 광주고법으로 갈 수 없는 사건들이다.

 이래도 제주부가 제주 원외재판부로 이름만 바뀐 것인가.

앞으로도 주요 항소 사건과 제주재판부에서 처리하기 껄끄러운 사건 등은 광주고법으로 재배당될 것이고, 이로 인한 소송 당사자와 피고인들이 당할 경제적.정신적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특히 언론 등 여론 주도층과 법조계, 사회단체 등 도민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탓인지 어떤 반응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광주고법 전주부는 제주부에 비해 훨씬 뒤에 설치됐다.

광주와의 거리도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전라북도 도민들은 전주부의 원외재판부 격하에 극구 반대하면서 전주부로의 환원을 대법원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기자는 얼마 전 한 전주시민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적극적인 공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

그는 “제주부의 원외재판부 격하에 침묵하고 있는 도민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항소심 재판을 받으려고 비행기나 배를 타고 광주고법까지 가고, 경우에 따라 광주에서 1박하는데 따른 비용 부담이 만만찮을 텐데, 그래도 원외재판부를 원하느냐”는 것이었다.

광주고법 제주부 존치의 불가피성을 한 마디로 함축시킨 말이다.

아마도 이 지적이 틀렸다고 항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대법원의 고법 원외재판부 확대 설치는 제주부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대전고법 청주부와 앞으로 설치 예정인 서울고법 춘천 및 수원 원외재판부 모두 지역 주민들이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부는 이에 덩달아 휩쓸려 원외재판부로 강등돼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된 것이다.

대법원은 제주부를 둘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제주지역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항소 사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광주까지 너무 거리가 멀어 독립 재판부를 둔 깊은 사연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그래도 개혁적인 이용훈 대법원장 뿐이다.

이 대법원장은 시계바늘을 1995년 이전으로 거꾸로 돌린 실수를 다시 되돌려 놔야 한다.

도민사회 역시 광주고법 전주부로 돌려달라는 전북도민들처럼, 광주고법 제주부의 환원을 대법원에 강력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까지 가는 도민들의 불편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영영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