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사랑

2004-10-05     김덕남 대기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편안하게 관계를 지속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나 동료사이의 우정이나 남녀간의 사랑, 상하간 또는 이웃간의 믿음도 그것을 오래도록 온전히 지탱할 수 있는 것은 맹목적이고 감정적인 밀착이 아니라 이성으로 긋는 적당한 거리의 유지다.

이 적당한 거리는 바로 남을 배려하고 용납하는 도량이다.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일컬어졌던 독일의 쇼펜하우어(1788-1860)도 일찍이 이런 관계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양(禮讓)이라 했다.

▶이같은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른바 ‘고슴도치 사랑’이다.
눈보라 휘날리는 추운 벌판에서 암수 두 마리 고슴도치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너무 추워 체온을 나누려고 밀착하면 가시가 서로를 쑤시어 몸에 상처를 내고 아파서 떨어지면 스미는 찬바람이 살을 엔다.

두 마리 고슴도치는 다가섰다 떨어지기를 계속하다가 결국은 너무 떨어져 춥지도 않고 너무 가까워 쑤시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추위를 이겨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이 같은 적당한 거리를 설정하고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욕심이 ‘적당한 거리’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권력과의 밀착, 금력에 대한 맹신적 유착 등 하루살이 부나비처럼 죽을지도 모르고 ‘힘의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겁없는 군상(群像)이 넘쳐나는 세상은 그래서 불안하기만 하다.
적당한 거리가 무너지고 힘의 균형이 깨져버리면 거기에는 미움과 증오의 바람만 불것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든 금력과 든 모든 사람관계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의 슬기를 익혀왔던 옛 사람들의 예지가 새삼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