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내 삶의 터닝 포인트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복무하면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근본 개념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동일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그 생활 전반에 걸쳐 방향을 설정하여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여 나아갈 뿐 아니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논함에 있어 핵심어는 자기의사결정(Self-determination)과 선택권(Choice-making)이 그것이다.
▲ 긍정의 전환점
위인들의 삶을 보다보면 반드시 위인들의 삶에 전환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석가모니는 부족국가의 왕자로서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사문유관(四門遊觀) 즉, 성 밖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난 뒤,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시작한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한 헬렌켈러 인생의 전환점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사물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설리번 선생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다윈의 학문적 전환점은 갈라파고스군도를 탐사한 뒤였고, 비극적이긴 하지만 베토벤의 인생에서 청각을 잃고 음표만으로 음악을 작곡하던 시기야 말로 그의 음악에 전환점일 것이다.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을 처음 시작한 중증장애인 에드로버츠가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여 장애인의 문제를 인식한 것 역시 중요한 터닝포인트일 것이다.
이런 전환점이 위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위인들의 삶에서 전환점이란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지만, 평범함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자잘하게 느끼는 삶의 감동 역시 자신의 삶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이 믿음이야 말로 나에게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어교사라는 하나의 길만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 길이 내가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길이라 믿었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위인처럼 거창한 인생의 전환점은 아니지만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복무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 삶의 전환점을 찾았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조금은 수정해야하지만 말이다.
▲ 희망의 전환점
복무기관에서 내가 처음 맡은 일은 중증장애인 회원들의 이동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였다. 센터 회원의 상당수가 지체, 뇌병변 장애인이었기에 미약하기만 그들의 손과 발이 되 주는 것이었다.
목요일엔 사지가 심하게 마비된 희훈이의 활동보조인이다. 제주장애인요양원에 살고 있는 희훈이는 우리 센터에서 하고 있는 자조모임 중 하나인 노래패 ‘머리가락’ 회원이다. 스물세 살의 희훈이는 사지를 쓰지 못하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다.
많은 회원 중에서 내가 희훈이를 기억하는 건 내가 그의 활동보조를 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희훈이의 밝은 웃음 때문이었다. 사지가 마비되었지만,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희훈이의 모습에서 우울하기만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물론 스물세 살의 희훈이가 하고자하는 것을 신체적 장애로 하지 못했지만 희훈이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그 모든 것을 떨쳐버렸다.
“제 나이가 스물세 살인데 아직까지 한번도 정장을 입어본적이 없어요. 넥타이도 매고 싶고, 어린아이 옷이 아닌 멋진 옷도 입고 싶어요.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뭐 할 수 없죠.”
체념으로 들릴지도 모르는 희훈이의 말에서 나는 희망을 느꼈다.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편안한 옷을 입고, 하고자하는 것을 밖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라고 생각한 나의 인식에 전환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정장을 입고 싶다고 말하는 희훈이. 그 모습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자하는 희훈이를 찾았다. 나는 희훈이에 말에 어떤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아마 희훈이가 내 나이가 되면 정장도 입고, 넥타이도 매고 다닐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희훈이가 강해져야지. 희훈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해야지. 네가 정장을 입을 만큼 멋져지면, 아마 희훈이가 입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입으라고 말할 거야.”
내 말을 듣고 희훈이는 잠시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웃음을 뗬다. 나는 내 말이 희훈이의 희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작은 바람을 가지면서 희훈이와 함께 노래패 모임에 나섰다.
김 상 규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